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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의 힘…"내가 틀렸다"[김흥록 특파원의 뉴욕포커스]

파월·옐런 모두 인플레 오판 인정

재빨리 정책 바꿔 물가상승세 잡아

논쟁할 때도 뒷문 없는 '공개 토론'

열린 문화가 경제발전 토대 만들어





물가가 꿈틀대던 2021년 하반기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의회에 출석해 “인플레이션은 일시적(transitory)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이런 진단이 틀린 것으로 판명되면서 ‘트랜지토리’라는 단어는 연준의 오판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파월 의장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행정부의 재닛 옐런 재무장관, 학계의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이코노미스트들이 이른바 ‘팀 트랜지토리(team transitory)’를 이뤘다.

이후 이들의 대처는 어땠을까. 셋 모두 오판을 공개 인정했다. 옐런 장관은 지난해 6월 “물가 상승이 일시적이라고 봤던 내 판단은 잘못됐다”며 사과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점을 칼럼으로 썼다. 제목이 ‘인플레이션에 대해 내가 틀렸다’였다. 파월 의장은 사과까지는 아니지만 “인플레이션을 과소평가했다”며 오판을 시인했다.

우리에게는 낯선 모습이다. 그동안 잘못된 것으로 드러난 정책을 펼치던 기관장과 이를 옹호하던 학자들이 ‘내가 틀렸다’고 인정한 적이 과연 있었던가. 여야를 막론하고 경제 실패에 따른 고통에 대해 사과는 했을지언정 정책 판단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인정했던 장면은 떠오르지 않는다.

정책 오판을 인정하지 않는 행동에는 두 가지 심리적 전제가 있는 듯하다. 하나는 이를 인정하면 내가, 또는 우리 진영이 지는 것이라는 마음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렇게 나의 패배를 면하는 것이 국가 경제를 바로잡을 기회를 갖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무의식일 것이다. 반면 미국은 반대의 문화일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오판이나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며 지금이라도 정책 방향을 바로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다. 그러면서 오판을 만회할 기회가 시작된다.



이에 ‘내가 틀렸다’의 효과는 인정 이후에 본격화한다. 현시점의 미국 경제를 보자. 지난여름 1981년 이후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렸지만 불과 6개월여가 지난 지금 ‘연착륙이냐, 경착륙이냐’를 논할 만큼 한 고비를 넘긴 모양새다. 파월 의장은 사과 이후 금리 인상에 속도를 냈고 행정부도 인플레이션을 국내 정책의 최우선순위로 공표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계속 인플레이션을 분석하는 글을 쓰고 있다.

물론 미국 경제의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불확실성은 더 커졌다. 긴축을 중단해야 하는지, 더 나가야 하는지 의견은 분분하다. 또 한 번 오판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시기다.

이 시점에서 미국 이코노미스트들의 반응은 어떨까. ‘예측하기 어렵다’는 솔직한 답변을 내놓고 있다. 학술적 자존심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내가 기억하는 한 지금은 가장 읽기 어려운 경제”라고 했고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보고서에 “연준 편도, 시장 편도 들기 어려운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썼다. 무책임하다기보다는 현 상황을 그대로 인정하고 방향을 찾으려는 쪽에 가깝다. ‘내가 틀렸다’의 또 다른 형태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방향을 잡기 위한 논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이미 시작됐다. 연착륙을 바라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는 최근 임금 상승세가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를 백악관 홈페이지에 올리며 연준의 논리를 반박했다. 1990년대 연준 부의장을 지냈던 앨런 블라인더 프린스턴대 교수는 “지금은 연준이 멈춰야 할 때”라는 조언을 칼럼으로 전했다. 주목할 점은 논쟁이 공개적인 형태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전관과 권력 기관이 지인 또는 물밑의 경로를 통하지 않고 공개 의견을 내는 것은 ‘내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문화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문화는 경착륙·연착륙보다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미래를 만들 것이다. 인정하고 조정하는 과정을 거듭하는 사회는 곧 발전할 수 있는 사회라는 말과 동의어다. 우리나라도 잘못 판단했다면 ‘내가 틀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후 따르는 것은 더 활발한 정책적 고민일 것이고 그 수혜자는 우리 모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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