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신혼부부인 A씨(여?29세)와 B씨(남?34세)는 예비 신혼부부다. 혼수 비용과 집값을 반반씩 부담하기로 한 이들은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하나씩 있었다.
A씨는 결혼 후 설날엔 친정에 먼저, 추석에는 시댁에 먼저 가길 원했고 B씨는 혼인 전 모은 비상금을 부부 공동 통장에 넣지 않고 결혼 후에도 따로 관리하길 원했다.
결혼식을 앞두고 자주 다투던 이들은 결국 서로의 요구 사항이 담긴 혼전계약서를 작성했다.
이 혼전계약서의 조항 중 법적 효력을 갖는 것은 B씨의 요구 사항인 ‘결혼 전 모은 돈을 따로 관리하겠다’는 조항이다. 하지만 A씨의 요구 사항인 ‘설날에는 친정, 추석에는 시댁 먼저’는 결론부터 말하면 아무런 법적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 이유는 혼전계약서에 모든 내용을 쓸 수는 있지만, 법적 효력이 있는 부분은 ‘금전적인 내용’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혼전계약서의 법률상 명칭은 ‘부부재산계약서’다. 이름 그대로 혼인신고 전 등기를 마쳐야 효력을 발휘한다. 혼인신고 후 내용을 바꾸려면 가정법원에서 따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예를 들면 결혼 전 각자가 가진 재산을 어떻게 처분할 지 등을 통상적으로 혼전계약서에 담는다. ‘결혼 전 부모님이 사주신 집은 결혼 후 공동 명의로 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모은 비상금은 결혼 후 절반씩 나눠 가진다’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혼전계약서를 작성하고도 결혼 중 비상금의 절반을 나눠주지 않았다면 상대의 계좌는 압류될 수도 있다. ‘강제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A씨의 요구 사항처럼 법적 효력을 발휘하기 힘든 혼전 계약 내용들도 있다.
‘혼수 반반 집안일 반반’ ‘양가 부모님께 똑같이 용돈 드리기’ ‘10만원 이상 물건 살 때는 허락 맡고 사기’ ‘집에 손님 데려올 때는 3일 전에 미리 이야기하기’ ‘설날에는 친정, 추석에는 시댁 먼저’ ‘매일 10번 이상 안아주고 10번 이상 뽀뽀해주기’ 등 금전적인 문제와 관련 없는 문구가 대표적이다.
예외적으로 금전적인 내용이 아니더라도 혼전계약서가 법적 효력을 발휘하는 때가 있긴 하다. 부부가 이혼에 이르는 경우다.
판례로 지난 2015년 법원은 아내가 남편과 시어머니를 상대로 “남편이 혼전계약서를 잘 지키지 않았다”며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법원은 “부부가 작성한 각서, 사실혼 파탄의 책임 정도 등을 고려했을 때 혼인 파탄의 근본적이고 주된 원인은 피고에게 있다”며 “남편과 시어머니는 각각 4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법원은 남편의 과거 마약류 전과와 언행을 고려해 혼전계약서를 작성했는데도 지켜지지 않았던 점을 참작했다.
아내와 남편이 작성한 혼전계약서에는 △마약에 손대지 않기 △부인을 믿고 의심하지 않으며 결혼 전 생활(남자관계)에 대한 궁금증을 대화로 해소하기 △거짓말을 하지 않고 부부관계를 강요하지 않기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울산 땅을 증여하기 등이 담겼다.
마찬가지로 “바람 피우면 모든 재산을 포기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혼전계약서나, 혼인 중 외도가 발각돼 쓴 각서는 법적 효력을 발휘한다. 이는 재판상 이혼 과정에서 부부 중 어느 한쪽의 귀책사유를 인정하게 만드는 주요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륜을 해도 각자 한 번씩 봐주기’ ‘생활비를 1000만원 이상 주면 (상대방이) 바람 피워도 봐주기’ 등 일반적인 상식에 반하는 내용은 법적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민법 103조는 선량한 풍속이나 기타 사회질서를 위반하는 사항이 담긴 법률행위는 무효하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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