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의 목마'가 될까, 노동계 대열의 이탈일까.
최근 노동운동가인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이 정부의 노동 개혁 자문기구에 참가한 것을 두고 찬반 논쟁이 일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 정책 자문기구 성격 상 한 사무총장의 사퇴를 요구한다. 한 사무총장은 자문기구 내에서 노동계의 의사를 피력하는 게 맞다는 입장이다.
13일 노동계에 따르면 한 사무총장은 최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민주노총으로부터 상생임금위원회 의원 사퇴 요구를 받았다"며 사퇴를 거부하는 이유에 대해 연일 입장을 밝히고 있다. 2일 출범한 상생임금위원회는 노동 개혁의 목표인 이중구조 개선과 임금체계 개편을 논의하는 전문가 기구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공동 위원장을 맡아 사실상 정부 정책 기구로도 볼 수 있다.
한 사무총장은 사퇴 요구에 대해 "상생임금위에서 지불능력 바깥인 하위 50% (근로자)의 임금 보전을 중심 논의에 올리려고 한다"며 "적극적으로 반론을 제기하고 거수기 역할도 하지 않으려는데 심각하게 공격을 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로이의 목마처럼 정부 주도 자문기구 내에서 노동계의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한 사무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한 사무총장이 민주노총 간부였다는 점, 노동계에서 전태일 재단의 상징성이다. 이 점은 한 사무총장도 이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더 큰 이유는 상생임금위에 대한 우려다. 민주노총은 2일 논평에서 "상생임금위를 보면 고용부의 진단과 개혁 방향이 미래노동시장위원회(미래노동시장연구회) 때와 달라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노동개혁 과제를 만든 미래노동위원회와 정부는 임금의 연공성을 낮추고 직무성과급을 확산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반면 민주노총은 임금체계 손질보다 대기업의 부를 재분배하고 노동조합 활동 등 노동권 강화가 해결책이라고 맞선다. 한국노총도 이 같은 이유로 정부의 노동 개혁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두 노총을 중심으로 노동계는 정부 정책에 대한 대정부 투쟁 대열을 만든 분위기다.
한 사무총장의 상생임금위 참여 찬반 논쟁은 노동 개혁을 추진하는 정부의 노정 관계 딜레마기도 하다. 현 정부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비롯해 노사관계 제도·관행개선 자문단,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연구회, 중대재해처벌법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 등 전문가 기구를 속속 만들었다. 하지만 상생임금위를 제외하고 모두 학계 출신 위원으로 구성됐다. 상생임금위도 비교수는 15명 가운데 한 사무총장 등 2명뿐이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자문기구들의 논의 과제가 노동계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경영계가 바라는 제도 중심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국노총은 최근 논평을 내고 “노사가 없는 자문단 구성과 운영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한다”며 "과제가 현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데 노사를 배제했다”고 지적했다.
자문기구는 노동 개혁을 추진하는 정부가 선택한 일종의 ‘우회로’란 해석도 나올 수 있다. 그동안 노동 개혁은 사회적 논의와 노사정 타협의 방식을 주로 썼다. 하지만 합의 과정이 어렵다는 평가도 많았다. 개혁 방식을 두고 학계에서 전문가 과제 도출 후 정부 정책 추진 식의 트랙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도 최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사회적 대화와 방식, 내용은 정답이 없다”며 “한국의 정치, 문화, 권력 구조를 봤을 때 사회적 대타협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게다가 노사정 합의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아직 본회의를 열지 못하는 등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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