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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소희’는 사회고발 영화가 아니다

김동하 트윈플러스파트너스 대표(한성대학교 미래융합사회과학대 교수)


최근 영화 ‘다음소희’가 개봉했다. 영화는 감독과 배우가 관객과 소통하는 미디어지만, 기획·제작자입장에서 보면 노동현실이나 특정대상에 대한 고발, 폭로가 주된 의도는 아니었다. 우리 곁에서 살고 있는 평범하지만 소외된 한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냉혹하게 얽혀 있는지를 영화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주변인(周邊人). 둘 이상의 사회나 집단에 동시에 속해 양쪽의 영향을 함께 받으면서도 어느 쪽에도 완전하게 속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주인공 소희는 학생이면서도 기업에서는 비정규직 취급도 못받는 노동자이기도 했다. 기업과 학교라는 거대한 두 조직의 경계에서 양쪽에서 소외된 주변인 같았다. 민간과 공공, 한쪽 조직의 문제를 다른 조직이 해결하길 바라는게 아니라 양쪽에서 소외된 한 당찬 소녀만을 깊게 들여다보길 원했다.

대학이나 직장에 떨어진 뒤 궤도를 벗어난 아이들, 합격하고 나서도 방황하는 삶의 경계에 선 아이들에 대한 관심은 아이 셋을 둔 아빠로서 필연이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아티스트들, 감독과 형사 유진을 만나 이 이야기는 비로소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9년 전 바다에서 일어났던 참사 당시를 생각해보자. 혹자는 S그룹을 비난했고, 혹자는 유모씨 또는 그의 가족을, 또는 선장을, 또는 해경을, 또는 당시 책임자를, 또는 정당을 각자의 입장에 따라 비난의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영화 다음소희에서 형사 유진은 그 어떤 선입견도 없이 소녀를 둘러싼 두 거대 조직을 따라간다. 조직에 속해 있지만 조직의 시선이 아닌 어른 한 사람의 시선으로 소희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현실의 냉혹함에 몸서리친다.

필자는 영화가 처음으로 공개된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관객 반응을 잊을 수 없다. 영화 중반부터 몇 차례를 낄낄거리고 웃더니, 감정을 쏟아내는 장면엔 기립 박수를 치고 웃으며 통쾌해 했다면 한국 관객들이 믿을 수 있을까. 프랑스 관객들은 보다 영화적인 설정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한국 관객들은 현실적인 ‘측은지심’이 더욱 강하기 때문일까.

다음소희는 분명 고구마가 아니라 사이다(약 탄산이지만)를 주는 영화라 믿고 있는데, 너무 무거운 영화로 비쳐지고 있는 점은 다소 아쉽다. 어쨌든 프랑스, 북미, 유럽, 사우디아라비아 등 영화제의 관객들을 통해서 확신할 수 있었던 건 거대 조직에서 소외된 한 개인의 이야기는 세계인들이 공감하는 ‘글로벌 코드’라는 점이었다.

실제 우리는 조직을 떠난 개인, 또는 조직에 불안정하게 걸쳐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많은 전문가들이 우리 사회가 개인을 범주화하거나, 조직을 통해 규정짓는 성향이 강하다 지적하는 데엔 분명 이유가 있다.





정규직 아니면 비정규직, 주류 아니면 비주류, 늘공 아니면 어공, 무기계약직 아니면 단기계약직, 정답 아니면 오답으로 가르는 게 일상화된 이 땅에서 주변인은 항상 소외될 수밖에 없다.

융합과 크로스오버를 외치면서도 우리 자신은 다른 진영에서 넘어오는 주변인에게 먼저 밥그릇을 갖다 주지 않는다. 오히려 밥그릇을 빼앗지는 않을까 경계하거나 회색빛으로 바라보곤 하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제작자로서 야무진 바람이 있다면, 우리 기성세대들이 후배들을 진영이나 조직이 아닌 한 개인으로서 좀 더 바라봐줬으면 하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영화 다음소희 역시 어떠한 선입견도 없이 한편의 영화로 바라봐주면 좋겠다.

좋은 말로 ‘N잡러’라지만, 대학교수와 벤처기업 대표를 함께 하고 있는 필자 역시 주변인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제작 과정이 너무 힘겨웠던 것도 그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배급까지 맡아 무사히 개봉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조직에 속한 운 좋은 계층이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어쩌면 이 영화는 기자 출신의 주변인에 의해 비롯된 저널리즘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미디어 선후배분들의 응원과 모태펀드,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지원사업에 선정되고 쏠레어투자파트너스와 같은 훌륭한 메인투자사와 KN투자파트너스를 만난 건 엄청난 행운이었다.

그리고 프랑스 관객들과 일부 국내 관객들의 평을 빌어 외치고 싶다. “영화 다음소희는 불쾌한 사회고발 영화가 아니라, 슬프지만 재밌는 한 편의 영화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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