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의 운동장이 노동계 쪽으로 너무 기울어지고 있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을 기어이 강행 처리할 태세다. 민주당은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노조법 2조와 3조의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민주당은 21일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상임위원회 논의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노란봉투법이 문제가 되는 것은 노동쟁의를 부채질할 소지가 큰 가운데서도 노조의 손해배상 책임은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개정을 추진하는 노조법 2조만 하더라도 근로자와 사용자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데다 근로조건과는 상관없는 것도 노동쟁의의 개념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렇게 되면 지금보다 노동쟁의가 대폭 늘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개정 법률안에는 파업 노동자에게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를 하지 못하게 막거나 제한하는 내용(노조법 3조)도 들어 있다.
그러잖아도 우리나라는 파업으로 인한 손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2010~2019년 국내에서 파업으로 인한 근로자 1000명당 연평균 근로 손실 일수는 39.2일로 일본(0.2일)이나 독일(4.5일), 미국(8.3일) 등 경쟁국들보다 월등히 많다.
이런 상태에서 노동쟁의를 더 부채질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쟁의 공화국’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국 우선주의가 심화하고 있는 글로벌 무역 환경 속에서 우리 기업들을 지원해줘도 시원찮을 판에 쟁의를 부추겨 기업 발목을 잡겠다니 정치권이 과연 청년 일자리의 심각성을 알기나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균형추는 이미 노동계 쪽으로 확 기울어져 있다. 지난 문재인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가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면서 노동자 단결권을 대폭 강화했다. 이로 인해 해고자와 실업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근로자들의 단결권을 강화하면서도 사용자들의 대응 수단은 마련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동조합법이 필수 공익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파업 시 대체근로를 할 수 없게 규정해놓고 있기 때문에 이를 믿고 툭하면 파업을 하기 일쑤다. 전 세계적으로 파업 시 대체근로를 전면 금지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노조법은 파업 시 사업장 점거도 생산 시설 등 주요 시설 점거만 금지하고 있어 노조가 출입문 등을 봉쇄할 경우 회사 측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노조의 불법 직장 점거를 막기 위한 유일한 수단인 직장 폐쇄도 엄격한 요건이 걸려 있어 활용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사정은 부당 노동행위도 마찬가지다. 노조법은 부당 노동행위의 처벌 대상을 사용자로 국한하고 노조의 잘못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제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노사 관계 제도의 글로벌 스탠더드화를 강조하지만 우리 노동법은 글로벌 추세와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 미국만 하더라도 부당 노동행위에 대해서는 근로자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사용자의 부당 노동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형사처벌 조항은 없다. 이것만 봐도 우리나라 노동관계법이 얼마나 노조 편향적인지 잘 알 수 있다.
노사 간 힘의 균형에 무관심하기는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권이 바뀐 지 9개월이 넘었지만 윤석열 정부는 근로시간과 임금체계 개편에만 힘을 쏟을 뿐 사용자에게 적절한 대응 수단을 마련해주려는 움직임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공무원들에게 기업인을 멀리하지 말라고 주문하지만 산업 현장에서 후속 조치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경제위기 상황이다. 정치권과 정부가 진정 경제를 살리려는 의지가 있다면 무엇보다 기울어진 노동시장의 운동장을 바로잡아주는 것이 시급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