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계약을 맺지 않았어도 업무를 지시하고 이를 이행하는 관계였다면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고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19일 밝혔다.
이 단체에 따르면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민사1부(전기흥 부장판사)는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다 사망한 A씨의 유족이 건국대 법인과 관리자 B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 측이 유족에게 1억7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15일 판결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인 근로기준법 제76조2항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근로계약을 맺은 경우에만 적용되는데 법원이 캐디와 같이 근로계약을 맺지 않는 특수고용노동자에게도 해당 법리를 적용해 판결한 것이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2019년 건국대 학교법인이 운영하는 경기도의 한 골프장에 캐디로 입사한 A씨는 관리자 B씨의 폭언과 모욕에 시달렸다.
A씨는 이듬해 회사 인터넷 카페에 부당함을 알리는 글을 썼으나 글은 곧바로 삭제되고 A씨는 카페에서 탈퇴됐다. 이 카페가 근무수칙과 출근표 등이 게시되는 용도였던 탓에 카페에 접속하지 못하게 된 A씨는 더는 근무할 수 없었다. 사실상 해고된 A씨는 보름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재판부는 "B씨는 캐디를 총괄·관리하는 지위상 우위를 이용해 A씨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고 근무환경을 악화시켰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근무환경 악화에 따른 직장 내 괴롭힘의 민사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를 들며 "대법원 판결은 직장 내 사업주·상급자·근로자와 다른 근로자 사이의 괴롭힘에 관한 것이지만 피해자가 반드시 근로자여야 할 필요는 없다"고 판시했다.
특히 사업주에게 경제적 종속성을 띠고 직접 노무를 제공하지만, 근로자와 달리 사업주의 특정한 지시나 지휘·감독에 구속되지 않아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중간적 위치인 특수고용노동자의 특성을 들며 "대법원 판결의 법리를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국대 법인에 대해서는 "B씨의 사무 감독에 상당한 주의를 했다고 보기 어려워 B씨의 불법행위에 대한 사용자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직장갑질119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더라도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될 수 있고,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캐디를 비롯한 특수고용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 위탁계약 노동자는 근로계약을 맺지 않아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근로기준법의 사용자와 노동자(근로자) 개념을 확대하고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에 원청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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