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중앙회와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지난해 11월 ‘한국경제 및 중소기업 정책 관련 의견 조사’를 벌였다. 국민 400명을 대상으로 현재 경제위기가 과거 경제위기와 비교해 어떤 지를 질문한 결과 지금이 역대 최대 위기라는 응답이 33.8%로 가장 많았다. 글로벌 금융위기(31.5%)나 외환위기(22.0%)보다 더 심각하다고 한다. 과거 위기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응답했나 싶어 응답자의 나이까지 살폈다. 금융위기와 외환위기를 모두 경험한 노장층도 현재 위기를 역대 최대위기로 꼽았다.
불행히도 지금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흔히 위기 때는 재정 투입을 확대한다. 간단하면서 가장 확실하다. 그러나 지금은 물가 상승이 워낙 가파르다. 재정 투입은 물가 상승을 부채질할 수 있으니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좋다. 이러는 사이 취약계층의 고충은 쌓여간다. 급기야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공공요금 인상 자제를 당부했다. 뾰족한 수단이 없는데 방안을 찾아야 하는 정부의 답답함이 느껴진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위기를 벗어난 이후다. 한국 경제에 저성장의 그림자가 워낙 짙게 드리워져 있다. 위기 탈출 후 경제가 제자리를 찾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정부는 지금의 위기는 물론이요 이후 다가올 근본적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
기업의 성장만이 한국 경제가 사는 길이다. 과거 정책의 목표는 경제성장률이었다. 이젠 글로벌 500대 기업에 한국 기업이 몇 개인지를 목표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근 서울대 교수에 따르면, 글로벌 500대 기업이 하나 더 생기면 1인당 소득은 0.3% 증가한다고 한다. 글로벌 기업이나 유니콘(기업 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기업) 수가 충분히 정책의 목표가 될 수 있다.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을 보면 한국 기업은 16개다. 중국이 136개로 가장 많고 이어 미국 124개, 일본 47개, 독일 28개, 프랑스 25개, 영국 19개 순이다. 500대 기업에 한국 기업이 10개 더 늘면 한국은 프랑스를 제치고 세계 5위의 경제강국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특정 산업이나 기업에 지원을 집중해 순위를 끌어올리는 방식은 곤란하다. 이러한 방식을 산업정책이라고 한다. 산업정책은 성장을 견인했지만 기업 간 양극화라는 부작용을 낳은 것도 사실이다. 양극화의 관점에서 보면, 산업정책은 공정이라는 시대 정신과 맞지 않는다.
이제 기업의 입장에서 정책을 바라봐야 한다. 이를 기업정책이라 칭할 수 있다. 기업정책은 기업의 생산과 경영에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우선이다. 정부는 기업이 맘껏 경쟁할 수 있는 운동장만 만들면 된다. 가령 과거에 땅을 일궈 산업단지를 제공했다면, 이젠 규제를 없애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지역 발전과 연계한 규제자유특구다. 포항에는 차세대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자유특구가 있다. 이 특구는 철강 시장의 불황으로 고전 중인 지역경제에 산소같은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는 포스코케미칼·GS건설 등 대기업도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대·중소 상생협력의 성공모델로도 손색이 없다. 납품대금연동제 정착을 위해서라도 특구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기업의 수명이 매우 짧다. 맥킨지 컨설팅에 따르면, 글로벌 기업의 수명이 10년 안팎이다. 삼성의 기업 순위 상승도 중요하지만 ‘사성’, ‘오성’, ‘육성’ 등 삼성을 넘어서는 기업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 유망 중소기업을 양성해 이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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