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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과학기술 R&D, 연구자에 투자할 때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

'선진기술 확보' 중책 맡은 공공硏

민간대기업과 임금격차 갈수록 커져

5년간 1000여명 대학·산업체 이직

정당한 대우 받도록 법·제도 보완을





얼마 전 아르헨티나 과학기술혁신부의 다니엘 페르난도 필무스 장관과 양국 간 과학기술 협력을 위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젊었을 때 봤던 한국과 이번 방문에서 본 한국이 같은 국가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한 모습에 크게 놀랐고, 그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한국의 뛰어난 과학기술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아르헨티나는 한국의 과학기술 발전상을 모델로 삼아 최근 도전적인 과학기술 육성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계획의 실행력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총생산(GDP)의 1%를 과학기술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법을 제정해 이전 대비 4배의 예산을 확보했다고 한다. 한국의 과학기술 현장에서 30여 년간 몸담아 온 필자는 한때 선진국이었던 아르헨티나가 한국을 롤모델로 삼아 국가 재건을 꿈꾸고 있다는 데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오늘의 한국을 잘 지켜내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새로운 도전과 혁신을 게을리할 경우 언제라도 다시 어려워질 수 있다는 생각이 대화 내내 머리를 맴돌았다.

우리나라는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공업화를 시작해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내고 반세기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뤄냈다. 글로벌 과학기술 혁신을 선도하는 주요 10개국(G10), 그리고 K컬처 기반의 소프트파워 세계 2위라는 문화 강국 한국에 최근 전 세계에서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오늘날 이렇게 강한 한국이 완성되기까지는 실로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노력과 헌신이 있었다. 특히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같은 정부출연연구소를 중심으로 국가 공공 부문에서 선진 과학과 산업 기술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국가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국가 공공 부문 연구 현장의 연구자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 필자가 정출연 소속의 신진 연구자들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가장 안타깝게 느끼는 것은 이들이 처한 열악한 근무 환경이다. 이들은 국내외 유수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정출연에 입사해 국가 연구자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갈수록 확대되는 민간 대기업과의 임금 격차를 사명감만으로 감당하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정출연은 대기업에 비해 급여는 다소 낮았지만 대학교수와 같이 65세 정년이 보장됐다. 연구자들은 정출연의 이러한 안정적인 근무 조건을 선호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겪었던 1999년 정출연의 정년은 61세로 줄었고 2015년에는 ‘청년일자리 창출’ 명목으로 정년 도래 전 2년에 대해 임금피크제까지 도입되면서 정출연 연구자들의 사기는 심각하게 떨어졌다. 그리고 이후 많은 연구자들이 대학과 산업체로 이직하고 있고 그 숫자는 최근 5년 동안 1000여 명에 이르고 있다.

국가 공공 부문의 R&D는 국가 유지와 발전에 필요한 고급 과학기술·인력·지식을 국가자산으로 축적하고 이를 국가 정책 수립 및 산업 부문에 공급해 활용하게 함으로써 국가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토대가 된다. 또한 환경·보건·식량·안보·에너지 등 다양한 공공 문제에 대한 R&D는 각종 사회문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해 국가 발전에 기여하도록 한다. 공공 부문의 R&D가 무너지면 국가의 경제·기술력, 인재 수급, 사회문제 해결 능력 등에서 많은 문제가 야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연구 현장에서 연구 성과를 만들어내는 주체는 연구자다. 지난해 말 윤석열 대통령이 정출연 인재 관리에 있어 오랫동안 큰 걸림돌이었던 블라인드 채용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줬다. 블라인드 제도는 공정한 채용을 위해 도입됐지만 지원자의 연구 성과를 확인하기 어려워 우수 연구인력을 뽑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제는 한 발 더 나아가 국가 공공 부문의 연구자들을 정당하게 대우해줄 수 있도록 법과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연구자에 대한 직접적인 투자가 가장 효과적인 R&D 투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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