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폭탄 돌리기 아냐. 우리 때 되면 한 푼도 못 받는다며." “연금 개혁 한다면서 정년 연장 얘기가 왜 나와. 나는 반대일세. 지금도 취직하기 힘든데 더 힘들어지라고.”
오랜만에 지인과 식사를 하는데 자꾸 옆 자리의 대화 내용이 귀에 들어온다. 돌아보니 30대 초반의 청년들이 연금 개혁을 안줏거리 삼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의 눈에는 연금 개혁이 개선이 아닌 개악으로 보이는 듯 하다.
역대 정부가 계륵처럼 여긴 연금 개혁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소속 민간자문위원회의 논의 내용이 알려지면서다. 소득대체율을 높일지 말지 합의를 못하면서 권고안이 연기되기는 했지만 한 가지 분명한 방향은 보인다. ‘더 내는’ 것이다. 현재 65세인 수급 연령을 단계적으로 더 올리는 방안에도 저항이 없는 듯 하다. 흐름을 봤을 때 70세가 되지 않을까 싶다. 기금 고갈에 대한 우려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일 터다.
현행대로 유지된다면 국민연금은 2041년부터 적자로 돌아서 2055년이면 고갈된다. 저출산 고령화가 예상보다 훨씬 가파르게 진행되면서 자문위 논의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2057년이었던 고갈 시기가 2년이나 앞당겨졌다. 더 낸다고 사정이 나아질까. 자문위는 국민연금 고갈을 막기 위해 현행 9%인 보험료율을 12~15%로 올리는 방안을 놓고 심도 있게 논의했다고 한다. 그래봤자 고갈 시기를 최대 15년 늦출 뿐이다. 단순히 더 내는 것은 ‘돌려막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의미다. 노동 시장 개혁, 정년 연장 등과 같은 구조 개혁이 거론되는 이유다.
민간 위원이나 수급 연령에 진입하는 베이비부머에게는 당연해 보이는 개혁 방향을 정작 이를 떠맡을 주역인 청년들은 공감하지 못하는 듯 하다. 이유는 하나.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보험료율을 장기적으로 30% 수준까지 올려야 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입자에게 연금을 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진다. 적용 대상이 기존 세대일 수는 없다. 모두 미래 세대의 몫이다. 국민연금은 준세금이다. 월급의 30%를 의무적으로 떼이고 나면 연금을 받기 전까지 나머지 70%만 가지고 집도 마련하고 결혼도 하며 먹고 자식도 키워야 한다. 가능한 일인 지 모르겠다.
수급 연령을 올리는 것도 숙제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올해부터 63세로 올라가고 2028년에는 64세, 2033년에는 65세가 된다. 이제는 이것도 모자라 더 높이자고 한다. 심지어 보건사회연구원에서는 보험료 내는 시기를 65세까지 늘리자는 의견도 냈다. 연금 받는 시기가 늦어지고 내는 기간이 길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일을 더 해야 한다는 것과 동의어다.
정년 연장이 논의되는 이유다.
이를 바라보는 청년층의 시선은 싸늘하다. 지금도 기존 세대가 일자리를 꿰차고 있어 일자리 얻기 어려운데 정년까지 늘어나면 젊은이들이 설 자리는 더 좁아질 것이라는 우려다. 실제로 2008년 이뤄졌던 60세 정년 연장은 청년들의 취업 나이를 잔뜩 끌어올렸다. 1998년 25.1세였던 신입 사원 평균 연령은 정년 연장이 적용된 첫해인 2008년 27.3세로 두 살 이상 늘어났고 2018년에는 30.9세까지 올라섰다. 정년이 2년 늘었는데도 이 정도인데 5년을 늘린다면 그 영향이 얼마나 될 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술자리에서 ‘결사 반대’가 괜히 나오는 말이 아니다.
1988년 국민연금이 처음 도입됐을 때까지만 해도 그 목적은 일할 능력을 잃은 사람들의 소득을 보전해 노후를 안정시키겠다는 것이었다. 35년이 지났다. 국민연금은 더 이상 노후로만 접근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섰다. 이제는 일자리의 문제이고 세대 갈등의 핵심이며 우리 사회 존폐를 가름할 변수가 됐다. 다차원적 문제를 일차원적인 접근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법이다. 연금 개혁도 마찬가지다. 복지 차원에서만 접근할 게 아니라 고용과 재정, 출산의 문제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신구 세대와 범부처가 함께 하는 논의 기구를 만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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