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범죄 의사면허취소법’(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로 넘어가며 급물살을 타자 이권 다툼을 벌이던 의료 직역단체들이 투쟁 전선을 구축하며 모처럼 똘똘 뭉친 분위기다. 치과의사단체는 물론 평소 의사단체와 사사건건 부딪히던 한의사단체도 "과도한 징벌적 규제"라며 두둔하고 나섰다.
대한한의사협회와 대한한방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치과병원협회 등 4개 단체는 20일 공동성명을 내고 "의료인 면허취소법이 지나치게 가혹하고 부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며 전면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오는 3월 본회의 처리를 예고한 일명 '중범죄 의사면허취소법’은 2021년 2월 국회 복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이후 2년 가까이 법사위에서 계류되다 지난 9일 복지위에서 정춘숙 위원장이 상임위원회에 직권상정하면서 무기명 투표가 이뤄졌다. 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본회의에 직회부됐다. 현행 의료법에서 △정신질환자 △마약중독자 △금치산자 △면허 대여 △허위 진단서 작성 및 진료비 부당 청구 등으로 한정된 의사면허 취소 사유를 '모든 법령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로 대폭 확대한 점이 쟁점이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의사가 살인이나 강도, 성폭행 등 중범죄를 저질렀을 때 면허를 취소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다. 다만 의료행위를 하는 도중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범해 금고 이상의 형을 받는 경우는 예외로 뒀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해 이들 4개 단체가 반대하는 이유는 개정안에서 적시한 의료인결격면허취소 사유의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미 의료법 제8조에 따라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 면허가 취소된다. 지난 2012년부터 의료법이 아닌 아동·청소년법에 근거해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의료인은 10년간 의료기관 근무가 제한되고 있다"며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은 모든 경우 면허를 취소하고 형을 처분 받은 기간에 더해 5년까지 면허 재교부를 금지하는 것은 과잉규제"라고 주장했다. 의료인은 국민 건강을 취급하는 직업적 특성상 민사상 손해배상 외에도 업무상 과실치상죄로 형사책임 위험에 놓여 있는데, 이런 직업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법안이 본회의에 회부되는 것만으로도 참담하다는 반응이다.
이들은 “의료인 직종에 대해 법원 판결에 따른 처벌 이외에 무차별적으로 직업 수행의 자유를 박탈함으로써 가중 처벌과 동일한 결과를 초래하며 헌법상 평등원칙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며 “소수의 비윤리적 행태와 불법 행위를 마치 전체 의료인의 문제인 것처럼 부각해 전체 의료계의 위상과 명예를 손상케 하고 무리한 입법을 강행하고 있는 국회의 무책임한 행태에 대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범죄 종류나 유형을 한정하지 않은 채 사실상 모든 범죄로 두고 강제 관리하는 방법이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으므로, 해당 법안의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어 “선진국에서는 의료인의 윤리와 관련한 전문적인 판단 영역을 인정하고 전문가 집단이 자율적인 면허 관리 기구를 통해 스스로 면허를 관리하고 그 가치를 지킬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며 “개인의 자유와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해당 법안에 대한 입법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