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이 올해 국정연설에서 지난 2년간 자신이 거둔 성과를 자랑했다. 물론 실체 없는 공치사는 아니었다. 그가 취임한 후 일자리는 기록적으로 늘어났고 실업률은 50년래 최저점을 찍었다. 그는 10여 년간 최대 규모의 연방 자금이 투입되는 인프라 법안에 서명했다. 청정에너지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 조항을 담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국제에너지기구(IEA) 수장으로부터 2015년 체결된 파리기후협약 이후 가장 중요한 조치라는 평가를 받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맞서 서방국들의 결속을 이끌어냈고 아무 성과도 없이 지루하게 이어지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가 이끄는 행정부는 노인 환자들을 위해 인슐린 가격에 제한을 뒀고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연방 차원의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 그는 전 국민을 경악시킨 중국의 ‘정찰풍선’을 격추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영향력을 약화시킨 것 역시 그가 거둔 성과의 일부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중간선거가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구호)운동을 심판하는 국민투표가 될 것이라고 밝히자 대다수 정치 평론가는 최악의 선거 전략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패배를 안겨준 유권자들은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트럼프의 위업을 계승하겠다고 공언한 공화당 후보들을 줄줄이 떨어뜨렸다.
한마디로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의 공약을 성실히 지키는 사람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차기 대선에 출마해서는 안 된다. 바이든 대통령이 국정연설을 재출마의 당위성을 알리는 기회로 활용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오자 민주당 내부에서는 80세로 고령인 그의 재선 도전이 과연 현명한 일인지를 둘러싸고 격론이 벌어졌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그의 출마를 지지하지만 민주당 유권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반(反)트럼프 성향의 공화당 전략가 세라 롱웰은 ‘바이든 대통령이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고 있으나 재선에 도전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이 민주당 지지자들의 지배적 견해라고 전했다. 사실 재선에 성공해 두 번째 임기를 마칠 때쯤이면 그는 80세보다 90세에 가까워진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워싱턴포스트(WP)·ABC뉴스 공동 여론조사는 민주당과 민주당 성향 무소속 유권자들의 78%가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이들 가운데 58%는 다음 선거에서 다른 대선 후보가 나오기를 원했다.
말더듬이라고만은 설명할 수 없는 그의 상습적인 실언은 듣기 민망할 정도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연설할 때마다 마음을 졸인다고 털어놓았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2020년 대선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팬데믹 덕분에 온라인 유세에 의존했지만 2024년에는 전국을 누비며 살인적인 현장 유세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 물론 국정 운영도 소홀히해서는 안 된다. 이는 60세 후보도 해내기 버거운 일이며 80대 후보에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과업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나설 경우 그의 상대는 2024년 46세가 되는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지율이 점차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국민적 정서에 극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2024년 대선 후보들은 불만에 찌들어 변화를 갈망하는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 이런 판국에 바이든 대통령과 드샌티스 주지사가 맞붙는다면 양자의 시각적 대비만으로도 민주당은 결정적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많은 민주당 유권자는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을 포기할 경우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진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후보로 지명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한다. 그러나 민주당 벤치에는 미시간주지사로 선출된 그레천 휘트머와 조지아에서 상원의석을 따낸 래피얼 워녹을 비롯해 신망 높고 유능한 정치인들이 수두룩하다.
필자가 마지막으로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을 지적하는 글을 썼을 때 그는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었다. 인플레이션은 기승을 부렸고 그가 야심차게 추진한 어젠다인 ‘더 나은 재건(BBB)’ 법안은 벽에 부딪혔다. 바이든 대통령이 그때 재선 출마 포기를 결정했다면 실패를 자인하는 것으로 보였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그가 남길 정치적 유산은 확실해 보인다. 그가 떠날 때를 아는 흔치 않은 지도자의 지혜를 가졌다면 그의 정치적 유산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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