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동자아트홀. 양복 대신 검은색 가디건과 라운드티를 입은 청년이 연단에 올랐다. 유준환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의장이다. 송시영 협의회 부의장도 검은색 후드티를 입고 협의회에 대한 기사들의 댓글까지 소개하면서 청중에게 농담을 던졌다. 이들은 노조 집회에서 볼 수 있는 머리띠, 소속 단체의 이름과 구호가 새겨진 유니폼도 입지 않았다. 송 부의장은 “정말 상식적인 노조 활동을 펴려는데 관심이 높은 것 같다”며 “협의회에 의장·부의장이라는 직책이 있지만 특별 권한이 없는 수평적인 위원”이라고 설명했다.
정치 파업보다 노동조합 본연의 활동에 나선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노동조합이 뭉쳤다. 기존 노조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정부는 MZ노조에서 노동 개혁의 동력을 얻겠다는 청사진을 그린 분위기다.
MZ노조의 과제는 전체 노조의 80%를 차지하는 양대 노총(민주노총·한국노총) 지형과 제도의 벽을 넘을 수 있는지다. 이날 출범한 협의회는 LG전자·서울교통공사·금호타이어 등 8개 기업의 노조로 구성됐다. 조합원은 6000여 명으로 대부분 MZ세대로 구성돼 ‘MZ노조 협의회’로도 불린다.
송 부의장은 “협의회는 정치 세력에 휘둘리지 않고 노동시장에 대한 연구, 지식 공유를 위해 결성됐다”며 “불필요한 정치 구호는 하지 않고 기존 쟁의행위와 다른 방식의 시위도 연구한다”고 설명했다. 유 의장은 “정치 활동을 하더라도 노동에 대한 사안에만 국한해 관심을 가지고 활동한다”고 말했다.
MZ노조 협의회는 2021년 주요 대기업과 공공 부문에서 붐처럼 이어진 노조들의 결과물이다. 이들 사무직군 내 MZ노조의 등장은 기성 노조의 한계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동안 제조 현장 근로자가 주축이 된 노조의 틀 안에서 사무직은 임금을 중심으로 상대적 박탈감이 컸다. MZ노조는 양대 노총에 속하지 않은 ‘독립 노조’로 활동한다.
정부는 ‘MZ노조 껴안기’에 나섰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해 9월 협의회 참여 노조들과 간담회를 열고 최근에는 정보기술(IT) 노조 지회장들도 만났다.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발대식에 참석해 “기존 노조는 투쟁 과잉과 불법적 행태를 보였다”며 협의회 활동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MZ노조의 등장은 노동 개혁과도 밀접한 상황이다. 협의회 참가 노조는 회계 투명성 강화, 정치 파업 지양 등 정부의 노동 개혁 방향과 일치하는 지점에 있기 때문이다. 반면 노동계는 정부의 회계 투명성 강화로 노조 활동 자주성을 훼손한다고 비판해왔다. 양대 노총 모두 전면에서 노동 개혁을 ‘노동 개악’이라고 비판한다. 이 때문에 정부는 노동 개혁의 당위성을 MZ노조에서 찾겠다는 복안을 세웠다.
다만 협의회의 등장은 현행 법과 제도대로라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수도 있다. 2011년 복수 노조가 허용되면서 교섭 창구 단일화가 함께 도입됐다. 교섭 창구 단일화는 1사 1교섭 원칙을 만들었다. MZ세대 노조처럼 뒤늦게 조직되고 조합원 수가 적은 소수 노조는 사용자(사측)와 임금 및 단체 협상을 할 수 없다. 노조는 임단협을 못하면 사실상 영향력이 없다. 협의회 구성 노조가 겪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도 교섭권이 있는 노조에 비해 사측에 대한 영향력이 없다는 것이다.
협의회가 양대 노총과 어떤 관계를 형성할지도 관심이다. 이날 발대식에는 양대노총 위원장 모두 불참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8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협의회 출범과 관련해 “정치 문제 개입은 노동자와 서민의 삶을 바꾸는 중요한 의제”라고 말해 MZ노조의 인식을 에둘러 비판하기도 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