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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전 이제 9년째…韓 독립운동처럼 싸워야죠”

서부 르비우 출신 직장인 올랴

"식민지배·공산독재 항전 韓과 유대감"

돈바스 출신 유학생 산드라

"러시아 침공에 가족의 삶과 터전 잃어"


지난해 2월 24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특별 군사작전’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어느덧 1년이 됐다. 러시아의 침공은 전세계, 특히 피해 당사국인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형언할 수 없는 큰 아픔을 낳았다. 우크라이나 국내는 물론 해외에 있는 우크라이나인들 역시 몸은 떨어져 있어도 그 아픔은 함께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에서 온 올랴(29)는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한 의료기기 업체의 마케터로 일한지 1년이 조금 넘었다. 2014년 돈바스 전쟁으로 고향을 한 번 잃은 유학생 산드라(19)는 2021년부터 한국에서 유학하고 있다. 서울경제는 우크라이나 전쟁 1주기를 맞아 우크라이나에서 멀리 떨어진 대한민국에서 유학생과 직장인 신분으로 조국을 응원하는 두 사람을 각각 23일 서울 모처에서 만났다.

올랴가 서울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훈 견습기자.




△자기소개를 해달라.

ㅡ한국 의료업체에서 마케터로 근무하는 올랴다. 키이우 국립대학에서 한국어로 학사와 석사를 마쳤고, 언어학 박사 학위도 취득했다. 한국에는 어학연수와 여행 등으로 두 차례 방문한 바 있고, 지난해 취업에 성공해 1월부터 한국에서 지내고 있다.

△지난 1년 간 어떻게 지냈나.

ㅡ취업한 뒤 한 달 만에 러시아로부터 조국이 침공 당해 거의 매일 밤을 울면서 지내고 있다. 그래도 한국인들이 많이 나를 이해해주고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나는 전쟁이 시작된 뒤 유럽을 포함한 다양한 나라로부터 온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해봤는데, 주변 강대국에게 오랫동안 식민지배를 당한 점, 공산주의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운 점 등 한국만큼 역사적으로 비슷한 나라가 없어서 잘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한국은 어쩌면 현재 우크라이나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특히 9년 째 러시아군이 점령한 크림반도는 언어 사용이 제한됐다는 점에서 일제강점기 한반도와 매우 유사하다. 해당 지역에서 경찰이나 군인이 불시에 휴대전화를 수색했을 때, 언어가 우크라이나어로 설정됐거나 우크라이나어 음악을 듣다가 적발되면 큰 곤경에 처할 수 있다.

과거 한국인들이 해외에서도 독립운동을 했던 것처럼, 나 역시 외국인 한국에서 조국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매주 주말 침략자 러시아를 규탄하는 집회에 참석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의 소식을 한국어로 알리는 인스타그램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 처음 올때만 하더라도 여행도 자주 가고 언어도 더 배우고 싶었는데, 나 역시 매일 우크라이나를 위해 싸우느라 그럴 시간이 없다.

2017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에 있는 키이우 국립대학교에서 올랴(앞줄 오른쪽)가 한국어학과 석사과정 동료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올랴 제공.


△한국에서 지내면서 어려웠던 점은 있나.

ㅡ가끔 한국에서 나오는 전쟁에 대한 뉴스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다루는 방송이나 언론에 나오는 대다수의 패널들은 러시아 전문가들이지, 우크라이나 전문가들이 아니다. 현재 내가 알기로는 한국에 러시아 전문가는 많아도, 우크라이나 전문가는 거의 없다. 러시아에서 유학을 했거나 러시아 정부의 후원을 받은 이들 전문가들은 의도적이든, 의도하지 않았든 러시아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 이런 통념을 바로잡기 위해 나와 동료들이 민간 차원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한국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ㅡ최근 지진으로 큰 피해를 겪은 튀르키예에 한국 정부가 구조대원과 의약품을 보냈다. 70년 전 한국전쟁 당시 도움의 손길을 건냈던 튀르키예에 은혜를 갚은 것이라고 들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는 폴란드나 리투아니아같은 가까운 이웃은 물론 한국같이 먼 나라들이라도 우리에게 도움을 준 나라들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한국이 곤경에 처하게 된다면 우리 또한 어떠한 형태로든 반드시 도울 것이다. 부디 관심을 가지고 계속해서 응원과 지원을 해주길 바란다.

서울경제와 인터뷰하는 산드라. 이정훈 견습기자




△자기소개를 해달라.

ㅡ순천향대학교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하고 있다. 2021년부터 부산에서 1년 동안 어학연수를 한 뒤, 지난해부터 대학에 입학해 공부하고 있다. 지금은 방학이어서 다소 한가하게 지내는 중이다.

△전쟁이 1년이나 이어져 간다. 그동안 느낀 바를 전해 달라.

ㅡ우선 전쟁이 1년이 아니라 2014년부터 9년 째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해두고 싶다. 우리 가족은 현재는 러시아가 점령한 크림반도의 도네츠크에 살았다. 내가 10살정도였던 2014년 러시아군이 크림반도 내 친러세력을 지원한 돈바스 전쟁이 일어났다. 우리는 모든걸 놔둔 채 서북쪽으로 700㎞ 떨어진 수도 키이우로 피난갔다. 완전히 낯선 키이우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 했고, 어느정도 살림이 안정됐으나 러시아가 다시 침공하며 우리 가족은 다시 뿔뿔이 흩어졌다. 현재 우크라이나인 성인 남성은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출국이 기본적으로 금지됐다. 그런 이유로 아버지 혼자 키이우에 있으며 나는 한국에, 어머니와 동생은 스위스에 있다.

△한국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나.

ㅡ장학금이나 생활비로 문제를 겪는 몇몇 우크라이나 친구들과 달리, 나는 한국 정부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있다. 나는 2021년 한국 외교부의 정부초청 외국인 장학생 프로그램인 GKS 프로그램으로 한국에 왔다. 이 프로그램으로 어학당 및 대학 등록금을 지원받았다. 또한, 현재 재학중인 대학으로부터 근로장학을 하는 등 생활비를 스스로 마련하고 있다.

2019년 우크라이나 키이우주 이르핀의 한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산드라. 이 공원은 지난해 러시아군에 의해 점령되며 완전히 파괴됐다. 사진제공 산드라.


△한국에서 지내며 어려웠던 점은 없나.

ㅡ문화적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한국인들은 좋다. 하지만 나를 러시아인으로 착각한 일부 한국인들의 무례한 언행이나 행동으로 종종 곤란한 적이 있다. 그럴때마다 나는 우크라이나인이라고 설명하지만, 이들 대다수는 자신이 할 말만 하고 자리를 뜨는 경우가 많아 속상한 경우가 있다.

나보다는 멀리 떨어진 가족이 더 걱정된다. 엔지니어인 아버지는 도네츠크에서 한번, 키이우에서 두번 두 차례에 걸쳐 당신이 이룬 모든 것을 러시아에 의해 잃었다. 게다가 지난 1년간 혼자 러시아의 공습이 일상화된 키이우에서 지내며 우울증이 심해졌다고 들었다. 가족들과 연락을 자주 하고 있지만, 솔직히 걱정이 많이 된다.

△우크라이나로 돌아갈 계획은.

한국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하고 있어 훗날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끝난 뒤 복구사업을 할 때 어떠한 방식으로든 기여하길 바란다. 또 과거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친 적 있는데 이런 경험이 전쟁으로 어려움에 처한 우리나라 아이들을 돌보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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