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전도연이 영화 '길복순'을 통해 살인청부업체 세계관의 일인자로 변신했다. 차가운 눈빛으로 가차 없이 칼을 휘두르다가 집에서는 사춘기 딸 때문에 고민하는 엄마의 얼굴이다. 여기에 각종 도구를 활용한 꽉 찬 액션까지 전도연에 의해 완성된다.
'길복순'(감독 변성현)은 청부살인업계의 전설적인 킬러 길복순(전도연)이 회사와 재계약 직전, 죽거나 또는 죽이거나, 피할 수 없는 대결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다. 길복순은 청부살인업체 MK엔터 소속 특A급 킬러로 몇 수를 내다보는 정확한 판단, 손에 잡히는 모든 걸 무기로 활용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회사가 시키는 일이라면 100% 성공해 업계 신화로 떠오른다. 이런 그에게 가장 어려운 건 15살 딸 길재영(김시아)을 교육하는 것이다. 사춘기에 접어든 딸의 속내를 알 수 없어 힘들다.
킬러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워킹맘의 이중생활은 흥미로운 소재다. 길복순은 웃으면서 사람을 죽이는, 피도 눈물도 없는 킬러다. 여유로운 표정과 군더더기 없는 몸짓은 그가 얼마나 킬러로 오래 활동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그도 집으로 돌아오면 사춘기 딸 뒷바라지하기 바쁜 엄마다. 한참 싸우던 살해 대상에게 "마트 시간 다 돼서 빨리 집에 가야 된다"고 말하는 순간 분위기가 바뀐다. 집에 돌아온 그는 밀린 집안일을 하고, 학부모 모임에 참석하는 등 교육에 힘쓴다.
사람 죽이는 건 쉬운데, 딸을 키우는 건 쉽지 않다. 딸의 주머니에서 발견한 담배를 앞에 두고 몇 번씩 고민하고, 학교에서 사고 친 딸 뒷수습은 골치가 아프다. 설상가상 딸이 털어놓은 비밀에 대해서는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모르겠다. 최고 킬러의 최대 고민이 딸이라고 설정함으로써 멀리 있는 캐릭터와의 거리를 좁히게 한다.
이처럼 길복순의 모성애는 특별하다. 차가운 그가 일을 하다가 흔들리는 순간도 모성애가 발동했을 때다. 자식을 죽이려는 아버지의 의뢰 앞에서 흔들리고,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을 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길복순을 움직이는 건 딸과 모성애다. 차가운 킬러의 따뜻한 인간성이라는 간극이 캐릭터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작품 속 살인청부업체 세계관은 흥미롭다. 살인청부업체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나뉘고,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한다. 대기업은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으로 연습생을 훈련시키고, 준비가 됐다고 판단했을 때 선배와 함께 현장에 내보낸다. 이 업체들 사이에서도 규칙이 존재하고 있는데, 아이를 죽이지 않는 것, 회사가 시키는 의뢰는 수행할 것, 독자적으로 의뢰를 받지 않을 것이다. 작품 속 금기는 결국 깨지기 마련이다. 이 금기들이 어떻게 깨지고, 향후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지켜볼 만하다.
액션신은 화려하면서 깔끔하게 이어진다. 사람 죽이는 전문가들의 싸움답게 불필요한 동작은 없다. 정확한 타격으로 사람을 쓰러트리는 게 목표다. 칼, 총, 볼펜, 줄 등 다양한 도구를 이용한 액션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주변 지형지물을 이용한 액션은 타격감을 더한다. 자연스럽게 피가 난무하고 긴장감이 넘치는데, 불쾌하지 않다. 필요 이상의 상처를 보여주지 않은 연출 덕이다.
중심에는 전도연이 있다. 그는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중심을 잡고 이끌어나간다. 모성애, 일상생활 연기, 차가운 킬러의 눈빛, 군더더기 없는 액션 등 다채로운 길복순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 작품 안에서 전도연의 다양한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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