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노동 개혁을 위한 핵심 과제로 근로시간제 개편을 추진하는 가운데 고용노동부가 주 64시간제를 새 대안으로 꺼냈다. 기존 69시간제에 대해 노동계에서 ‘과로사 기준을 어긴다’며 비판의 목소리가 커진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노동계가 여전히 정부 개편안에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용부는 24일 서울 중구 로얄호텔에서 ‘근로시간 제도개편 대국민 토론회’를 열고 주 64시간제를 근로시간 개편안 중 하나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고용부에 제안한 주 69시간제 외에 새로운 근로시간 개편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지영 고용부 임금근로시간과장은 토론회에서 “현장에서 신상품 출시 같은 특수 상황에 11시간 연속 의무를 지키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있다”며 “정부가 추가 선택지(주 64시간제)를 마련하는 것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고용부가 주 69시간제의 대안으로 주 64시간제를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주 64시간제는 11시간 연속 휴식을 빼거나 연장근로 단위를 분기 이상으로 둘 경우 ‘한 주에 64시간은 근무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11시간 연속 휴식 등이 의무 적용되지 않아 출근 시간에 따른 퇴근 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앞서 연구회가 제안한 것은 일정 기간 연장근로를 몰아 쓰고 다른 주에는 이를 줄이거나 쓰지 않는 방식으로 특정 주에 69시간 근로가 가능하게 하는 방안이다. 예를 들어 연장근로시간을 한 달 단위로 관리하면 첫째 주에는 주 69시간 일할 수 있다.
하지만 나머지 두 주는 연장근로 없이 주 40시간만 일한다. 주 69시간제는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과 하루 휴게 시간 1.5시간(12시간 이상 근무 시), 주중 하루 유급 휴일에 쉰다는 가정으로 계산된다. 휴식 시간을 포함해 하루 최대 11.5시간씩 6일을 근무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하는 시간에 유연성을 도입해 근로시간 활용에 숨통을 틔우겠다는 취지였으나 오히려 노동계로부터 ‘과로사 기준(최대 주 64시간)을 어긴다’는 비판을 받았다. 연구회의 권고안을 두고 노동계가 주 7일 근무를 전제로 최대 주 80.5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을 정도다.
관련 법에서는 발병 전 12주간 1주 평균 60시간이거나 4주간 1주 평균 64시간을 과로사 기준(뇌심혈관계 질환 산재 인정)으로 본다. 노동부가 64시간제를 대안으로 검토하는 것도 과로사 기준을 염두에 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11시간 휴식없는 근무'에 벌써 시끌…건강권 딜레마 빠진 정부
고용부가 64·69시간제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으나 여전히 노동계의 시선은 차갑다.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서도 ‘장시간 근로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장시간 근로에 대한 노동계의 우려가 크다 보니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등 다양한 휴가 활성화 방안은 근로시간 개편안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게다가 연구회가 내놓은 69시간제의 경우 11시간 연속 휴식이 가능하나 64시간제에서는 적용되지 못해 노동계는 제도 적용에 각을 세울 수 있다. 이정식 장관이 직접 나서 여러 차례 11시간 연속 휴식은 노동자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의무화된다고 강조했으나 여전히 이에 대한 시각차가 뚜렷하다.
이날 토론회에는 노동계를 대표하는 양대 노총이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노총은 별도 논평에서 “11시간 연속 휴식 부여는 노동자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유일한 조치”라면서도 “(정부 검토안은) 1주 55시간을 장시간 노동의 기준으로 삼는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을 역행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고용부는 근로시간제 개편과 관련해 현장에서 연장근로시간이 추세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5인 이상 사업장의 상용직 월 평균 연장근로시간 추이를 보면 2014년 12.9시간에서 2021년 10시간으로 줄었다. 월 평균 연장근로 52시간을 초과하는 사업장도 전체의 1.4%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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