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극장가를 찾은 파운드 푸티지 장르 공포영화 '마루이 비디오'(윤준형 감독)가 쟁쟁한 개봉작 사이에서 은근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제삼자에 의해 발견된 미편집 영상’이라는 설정이 핵심인 이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카메라 푸티지(촬영본), 차량 블랙박스와 CCTV 영상, VCR 비디오와 영상통화 화면 등 시종일관 폐쇄적인 화면으로 특유의 공포를 선사한다.
잔인함의 수위가 높아 외부로 절대 공개되어서는 안 되는 증거 영상물을 '마루이 비디오'라고 부른다는 전제가 깔렸다. '극비'를 뜻하는 일본어 '마루히(まるひ)'에서 따온 이름으로 보인다. 김수찬 PD(서현우)는 검찰청을 출입하는 후배 기자(조민경)로부터 이 흥미로운 비디오에 관한 소문을 전해 듣고선 다큐멘터리 제작에 착수하며 곧 이상한 일들과 마주하게 된다.
바디캠 하나 달고 어둠 속 실제 폐가로 들어가야 했던 배우들의 거친 숨소리와 흔들리는 화면들은 극강의 긴장감 속으로 관객을 몰아넣기 충분하다. 마치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시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기분을 주는 묘한 공포영화 '마루이 비디오'는 26일 기준 '서치2'에 이어 박스오피스 5위에 올라가 있다.
20년 전 한국 최초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라고 불리는 단편 영화 '목두기 비디오'(2003)가 '마루이 비디오'의 원작 격이다. 여관방의 불법 촬영물에 우연히 혼령이 찍혔고 그를 둘러싼 사건의 실체를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쫓는다는 설정은 '마루이 비디오'와 같다. 윤준형 감독이 영화 공부를 시작할 무렵 써두었다는 단편소설이 토대가 됐다. '목두기 비디오'는 극장이 아닌 인터넷 파일공유 사이트에 최초 업로드됐다는 점이 특이한데, 당시 입소문을 제대로 타며 뒤늦게 극장 개봉까지 이뤄진 바 있다.
요즘에야 '파라노말 액티비티'(2009)나 '곤지암'(2018) 등을 거치며 어느 정도는 익숙해진 장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목두기 비디오'가 나올 2003년 당시만 해도 대단히 파괴적인 형태였다. 그 흔한 엔딩 크레딧도 하나 없이 전문 성우의 진지한 내레이션과 건조한 자막 스타일, 영화 출연 경험이 전무한 배우들의 딱딱한 발화 모습으로 꽉 채운 이 페이크 시사고발 다큐멘터리는 PD 저널리즘의 권위를 그대로 가져와 관객으로 하여금 진짜로 착각하기 충분하게 만들었다.
당시 경찰 조사와 방송국 취재까지 이어질 정도로 충격을 주었었다는 전설도 함께 전해진다. 나중에 가서야 픽션임을 알게 된 사람들에게는 사기극에 가까워보일 수준으로 진지하고 사실적인 페이크 다큐물이다. 반면 '마루이 비디오'는 영화에 가깝다. 윤준형 감독이 20년 전 자신의 작품을 장편으로 각색하며 이야기에 살도 붙이고 오컬트적 요소도 더했다.
보는 이에 따라 지루해할 수도 있는 장르이긴 하다. 가짜인 줄 알지만 일단 속아보자는 마음으로 본다면 폐쇄적인 화면을 통한 극도의 긴장감과 특유의 현장감으로 몰입하기 딱 좋다. 단편 ‘목두기 비디오’는 53분, 장편 ‘마루이 비디오’도 87분 길이에 불과하다. 한겨울 추운 기온을 더해 잠시나마 오싹하고 서늘한 감정을 체험하고 싶다면 이번 영화가 제격이다.
'정체 모를 귀신의 이름'이라는 카피와 함께 창백한 혼령의 얼굴이 가득 채워진 당시 포스터가, 실은 영화 내용과 전혀 관련이 없었다는 점도 박수칠 만하다. 시작부터 관객을 제대로 속이고 들어가, 영화를 다 보고나면 찝찝한 마음으로 불 꺼진 방 안 저편에 뭔가 헛것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든다.
◆시식평 :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20년 뒤에도 충분히 무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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