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막대한 순이익을 기록한 시중은행들이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은행들을 힘든 서민들의 등골을 파내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공공의 적 취급을 한다. 이자율이 오르는 시기에 편승해서 예금이자는 천천히 올리면서 대출이자는 급속히 올려 높은 이자로 고통받는 서민들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 배만 불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은행 순이익의 많은 부분이 이자 수입에서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가 막대한 순이익을 올려 성과급을 받는 것은 당연하고 은행이 최대 실적을 올리면 공공의 적이 되는 현상이 과연 맞는지는 생각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경제 현상에는 이익을 보는 자와 손해를 보는 자가 있다. 이자율이 오를 때는 차입에 의존하는 제조 업체나 자산운용사들은 어려움을 겪지만 반대로 은행권은 이익을 늘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따라서 지난해 은행의 순이익이 증가한 것은 경제 상황의 변화에 따른 당연한 결과다. 오히려 이자율 상승기에 순이익이 줄었다면 더 큰 문제가 된다.
최근 은행권에 대한 비판은 경제적보다는 정치적 이유인 듯 보인다. 급격한 이자율 상승과 집값 하락으로 손해를 본 많은 이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희생양이 필요한 시기에 막대한 이익으로 성과급 잔치를 벌인 은행이 그 대상이 된 것이다. 여기에 이동통신 업체가 은행의 과점 체제에 대한 비판에 구색 갖추기를 위해 등장한다. 연이은 정부의 비판에 은행과 통신 업체는 경쟁적으로 각종 사회 공헌 계획을 발표하고 있고 정책 당국은 과점 폐해를 줄이기 위한 경쟁 체제 도입 방안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은행과 통신 시장은 규모의 경제가 필요한 시장이므로 과점 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장에 경쟁 체제를 도입하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매우 복잡한 데다 단기간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 정부가 내놓는 은행권에 대한 각종 행정지도나 규제가 과연 은행의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정책인지도 의문이다. 정부가 은행의 순이익이 많다고 개입한다면 은행은 이익 창출을 위한 혁신을 할 인센티브가 없어진다. 미래의 경제 상황은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당장 올해나 내년 경기 하락에 따른 부도 증가로 은행권이 위기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할 경우 은행은 이익이 났을 때 정부가 개입한 것처럼 손해가 나도 정부가 구해줄 것이라 믿고 스스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혁신에 소홀하게 되고 이는 금융시장의 위기로 발전할 수 있다. 마치 1997년 외환위기 때처럼 말이다. 지금 정부가 할 일은 낙하산 인사 개입이나 관치 금융이 아닌 은행 스스로 경쟁력을 향상할 수밖에 없도록 각종 규제 혁파를 통한 금융시장의 개방과 지배구조 개선으로 투명한 경영을 유도하는 일이다. 직접 자금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해주는 P2P 뱅킹이나 각종 핀테크 기업 육성을 통해 시중은행을 경쟁에 노출시켜야 하고 해외 주요 금융기관의 국내 유치와 자유로운 영업을 허락해 국내 은행의 국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더 중요한 점은 이러한 정책은 장기적으로 계획에 따라 진행돼야지 피해자가 있으면 반드시 가해자가 있어야 한다는 식의 검사 논리로 단기간에 재판하듯이 진행할 문제는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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