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지난해 12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고 사우디의 지도부는 시진핑을 환대했다. 시진핑은 ‘통 큰 선물’로 약 38조 원 규모의 투자협정각서에 서명했다. 이 사건이 주목되는 것은 미국의 오랜 우방국인 사우디와 미국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타이밍에 중국 지도자가 사우디를 방문해 원유 거래 기준인 ‘페트로 달러’가 ‘페트로 위안’으로 바뀔 가능성까지 보였기 때문이다.
중국이 언제부터 사우디와 그렇게 친했을까. 역사를 보면 중국 황제가 보낸 사절단이 사우디를 방문한 것은 지금부터 약 600년 전인 1410년대 즈음의 일이다. ‘미국’은 물론 ‘아메리카’라는 이름조차 등장하기 전이다. 명나라 황제 영락제가 파견한 환관이자 무슬림인 정화(鄭和)의 대규모 해양 원정대가 수도 난징을 떠나 동남아시아 믈라카 해협을 통과해 인도양을 거쳐 아라비아반도를 방문했다. 정화의 함대에 탑승했던 또 다른 무슬림이자 저장성 사오싱 출신의 마환(馬歡)은 귀국 후 여행기를 남겼는데 바로 ‘바닷가를 열람하다’라는 뜻의 ‘영애승람(瀛涯勝覽)’이다. 그는 방문했던 20여 나라 가운데 마지막에 ‘천방국(天方國)’이라는 이름으로 아라비아의 메카 방문기를 남겼다.
무슬림이었던 까닭에 마환은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국에 대해 극찬의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성인(무함마드)이 이 나라에서 교법(敎法)을 천명해 널리 알리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 나라 사람들은 모두 회교 율법에 따라 일을 행하면서 감히 조금도 어기거나 범하지 않는다.” “서쪽으로 하루를 가면 메디나라는 성에 도착하는데 무함마드 성인의 무덤이 바로 이 성 안에 있어서 지금도 무덤 위에서는 강렬한 빛이 밤낮으로 구름에 닿을 듯이 치솟는다.”
그런데 이게 끝이었다. 명은 더 이상 아라비아반도의 나라들과 공식적인 교류를 하지 않았다. 중국 내 무슬림들은 차별과 탄압 속에 오랜 세월을 지냈다. 600년이 지나 다시 양국 정상이 악수하며 경제 협력을 약속하지만 언제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역사에 기록될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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