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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美 반도체 영업기밀 공개 요구, 정부·국회 수수방관할 때 아니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 보조금 지급의 대가로 기업들에 요구하는 조건이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다. 미 상무부가 지난달 28일 공개한 세부 기준에 따르면 ‘반도체지원법’에 따라 지원금을 받는 기업들은 수익성 지표와 재무계획 등 내부 자료를 제출하고 연구·생산 시설까지 공개해야 한다. 예상을 넘는 초과 수익을 내면 미국 정부와 나눠야 한다. 미국이 보조금 지원을 빌미로 보안이 필수인 반도체 핵심 공정과 경영 기밀을 모두 공개하라고 압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미국 납세자의 세금을 투입하는 일이라지만 지나친 시장 개입이고 그대로 수용하기 어려운 경영 간섭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 입장에서는 미국 정부의 보조금이 혜택이 아니라 족쇄가 될 상황이다. 게다가 미국의 보조금 규정에는 향후 10년간 중국 등에 신규 투자를 할 수 없다는 ‘가드레일’ 조항까지 달려 있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의 40%, SK하이닉스는 D램의 절반 가까이를 각각 중국에서 생산하는 만큼 그 파장을 가늠하기 힘들다. 중국 사업을 접을 수도, 그렇다고 미국이 구축하는 반도체 공급망에서 이탈할 수도 없는 K반도체는 그야말로 사면초가 상황에 빠졌다.

이 같은 딜레마는 개별 기업들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정부가 외교력을 총동원해 풀어가야 할 경제 안보 이슈다. 정부는 한국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가 미국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워 미국 정부를 설득해 양국이 윈윈하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한미 동맹의 실질적 격상을 통해 미국 측으로부터 보조금 조건의 예외 적용과 반도체 중국 수출 제한 유예 기간 연장 등의 약속을 받아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동맹 ‘칩4’의 참여국인 일본·대만과 공조해 대미 협상력을 키우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회는 반도체 불황과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등 최악의 여건에서 고군분투하는 반도체 기업들의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 전략산업 지원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반도체 설비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비율을 높이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하루속히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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