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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행사' 이보영, 공감 대신 이해하는 마음으로

'대행사' 이보영 / 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제공




'대행사'는 고아인의 성장 드라마다. 누구에게도 쉽게 곁을 주지 않고, 속에 있는 말은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가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우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보영은 공감할 수 없는 고아인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됐다. 그는 고아인에게 공감할 순 없지만, 이해하는 방향으로 캐릭터를 만들어나갔다.

JTBC 토일드라마 '대행사'(극본 송수한/연출 이창민)은 VC그룹 최초로 여성 임원이 된 고아인(이보영)이 최초를 넘어 최고의 위치까지 자신의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그린다.

강자가 돼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 고아인은 쓰레기장에서 주워 온 참고서로 공부하며 더욱 독하게 자신을 몰아붙여 한국대 합격증을 받았지만, IMF 때문에 모든 장학금이 취소된다. 결국 지방 국립대 입학을 결정한 그는 졸업 후 국내 2위 광고 대행사 VC기획에 만점으로 입사한다. 19년 동안 감정 없는 기계처럼 일만 한 그는 업계 1등이 된다. 돈과 성공에 미친 '돈시오패스'라는 오명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결국 모두의 예상을 깨고 임원으로 발탁되지만, 자신이 1년짜리 얼굴마담 임원이란 걸 알고 새로운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고아인은 보통 사람들이 속으로 생각할 법한 이야기를 말로 내뱉는 인물이다. 모두가 어려워하는 회장 딸인 강한나(손나은)에게 "물어보고 일하라"고 하고, 최창수(조성하)에게도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이보영은 고아인의 이런 모습에서 대리만족을 느껴 출연을 결심했다.

"제가 조직 생활을 해보지 않았고, 회사도 다녀보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속으로 생각한 말을 입으로 내뱉으면서 마구 질러대는 고아인이 재밌더라고요. 회사 다니기 힘든데, 고아인이 해주는 게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죠. 처음에는 '어쩜 이렇게 말을 잘할까?' 싶었어요. '이끌던가, 따르던가, 아니면 비켜주던가'라는 대사가 가장 공감이 돼요. 고아인이 독설을 해서 미워 보일 수 있지만, 시청자들이 그가 이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보길 원했어요."

'대행사' 스틸 / 사진=하우픽쳐스, 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 제공


눈치 보지 않고 독설을 퍼붓는 고아인이 이해되지는 않았다. '왜 저렇게까지 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든 것이다. 이보영은 고아인을 연기하는 입장에서, 공감보다는 이해를 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대본을 열심히 봤어요. '얘는 왜 이렇게 아플까?' 이 아이가 어떤 감정인지 생각을 많이 했죠. 신을 놓고 최대한 앞뒤 상황을 생각했습니다. 발음도 고아인의 감정에 따라 만들었죠. 제가 워낙 말투가 또박또박해서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는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PT 발표를 할 때는 명확하게 잘 들리더라고요."(웃음)

'대행사'는 이보영의 첫 오피스물이다. 처음 경험한 회사 생활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는 '이렇게 정치를 해야 돼?', '승진하려면 이래야 돼?', '여기서 라인을 타야 돼?'라는 생각이 연이어 들었다고 말했다. 또 배경이 광고 회사인 만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저는 창작과 맞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기발해야 되고 번뜩여야 되잖아요. 사람들이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요즘 길 가다가 광고 카피를 보면 '저걸 위해 몇 달은 고민했겠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로 공감했죠. 제가 만약 배우가 되지 않고 일반 회사에 다녔으면 진작 꺾였을 것 같아요. 저도 마음에 없는 소리를 못하는 편이거든요."(웃음)





고아인은 혹독한 회사 생활을 견디기 위해 술과 약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보영은 혼자 집에 들어와 술과 약을 먹는 장면을 찍을 때마다 외롭고 아팠다고 털어놨다. "이렇게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정도였다. '대행사'는 이런 고아인이 주변 사람들을 곁에 들이고, 더불어 사는 걸 배우며 성장하는 과정을 담는다.

"주변에 좋은 사람이 굉장히 많잖아요. 오른팔 같은 후배가 있고, 아픔을 알아주는 친구가 있죠. 사람과 함께하는 법을 점점 알아가기 시작해요. 조은정(전혜진)이 들어와서 '우린 한 팀'이라고 말해주기도 하고요. 그동안 사람을 소모적으로 썼다면, 점점 내 사람을 챙기는 모습으로 변해요. 혼자 사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거예요."

"저도 아이 낳기 전에는 예민한 부분이 있어요. 캐릭터를 떠나보내기 어려워했고, 오히려 안고 있는 기분을 즐겼죠.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니 그 감정을 집에 가져갈 수 없더라고요. 아이한테 '엄마 힘들어'라고 말할 수 없으니까요. 이후 캐릭터와 현실에 대한 분리가 잘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보영은 더 높은 곳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고아인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신인 시절을 떠올렸다. 고아인은 카피를 잘 쓰기 위해 될 때까지 쓰는 방법을 택하는데, 이보영의 신인 시절도 비슷했다. "될 때까지 하라." 고아인처럼 도망가지 않고 버틴 게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신인 때는 카메라 앞에 서면 연기를 잘 못하잖아요. 집에서 아무리 연습을 해도, 수십 명 앞에서는 잘 안되더라고요. 저도 신인 시절에 욕도 먹고, 촬영이 지연되면 눈치도 봤어요.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현장 가기 무서워져요. 도망가고 싶고, 내 길이 아닌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오죠. 그런데 그 시기를 버티니 일이 좋아지더라고요. 내가 만든 캐릭터를 사람들이 좋아해 주면 정말 기쁘고, 버틸 수 있는 힘이 돼요. 이걸 처음으로 느낀 게 드라마 '적도의 남자'였습니다. 같이 소통하면서 만들어간다는 느낌이었고, 처음으로 존중받는 기분이었어요."(웃음)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시청률 16%(닐슨코리아 전국 유료 기준)를 기록하며 인기리에 종영했다. 이보영은 재밌게 찍었던 만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해 기쁘다고 미소를 보였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은 성과였다.

"요즘 시청률 잘 나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요. 게다가 오후 10시 30분에 시작하잖아요. 저는 그 시간에 자거든요. '이 시간에 누가 보나' 싶었어요. 7~8% 정도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더 잘 나와서 '이게 무슨 일인가?' 당황하기도 했어요. 정말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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