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중국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빅테크’ 관련 인사들이 자취를 감췄다는 점이다. 수년간 당국의 단속에 시달렸던 빅테크 거물 대신 등장한 인물들은 반도체·전기차·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체 수장들이다. 미국과의 첨단산업 경쟁에 역점을 두고 있는 중국 정부의 관심사를 반영한 변화라는 해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과 블룸버그통신은 4일 이번 전인대 인민대표와 정협 위원 명단에서 마화텅 텐센트 회장, 딩레이 왕이(넷이즈) 창업자, 리옌훙 바이두 최고경영자(CEO),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 등 굵직한 빅테크 인사들의 이름이 빠졌다고 보도했다. 중국 공산당은 5년마다 전인대 인민대표와 정협 위원을 임명한다. 이들이 국정 자문 역할을 하는 만큼 전인대 인민대표와 정협 위원 명단에서 중국 정부의 관심사를 엿볼 수 있다.
실제로 이번 명단에는 중국이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첨단산업 분야 인사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전인대 대표에는 레이쥔 샤오미 회장을 비롯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화훙반도체의 장쑤신 회장, 전기차 제조사 샤오펑자동차의 허샤오펑 회장, 애플 협력 업체 고어텍의 장빈 회장 등이 임명됐다. 정협 위원에는 AI 반도체 제조업체 캠브리콘의 천톈스 CEO, 사이버 보안 업체 치후360의 저우훙이 회장 등이 포함됐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번 양회에 참여하는 신소재·항공우주 등 첨단 기술 분야의 전문가는 100여 명에 이른다. 일부 빅테크 대표가 여전히 명단에 있기는 하지만 첨단 기술로 대세가 기운 것은 명백하다고 블룸버그통신은 평했다.
이 같은 세대교체는 이미 예견된 바라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당국은 최근 2년여 동안 빅테크에는 고강도 규제로 일관한 반면 반도체로 대표되는 첨단산업 육성에는 적극적으로 나섰다. 미국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 등을 내세워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행보를 의식한 듯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22일 공산당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첨단 기술) 국산화 대체 수준과 응용 규모를 향상시켜야 한다”며 ‘첨단 기술 자급자족’을 강조했다. 이번 양회 명단 역시 미국에 대응해 향후 반도체 굴기를 강화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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