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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유전체 통으로 정밀분석…"2주내 환자 맞춤형 치료 가능"

[메디컬 인사이드] 권민석 아주대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

전장유전체분석검사 첫 시범도입

암조직 유전자 분석 돌연변이 확인

약제반응 예측…치료 효율성 높여

내달 아주대 등 주요병원서 상용화

권민석(오른쪽) 아주대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가 환자에게 암 유전체 분석 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아주대병원




“위암도 당황스러운데 복막전이까지 되었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유전자검사를 받았는데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암의 원인을 찾았습니다.”

서경제(55·가명)씨는 몇달째 소화가 되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가 복막전이를 동반한 4기 위암 진단을 받았다. 아버지가 40대에 위암으로 사망했던 터라 서씨의 충격은 더욱 컸다. 복막전이가 일어나면 통상적인 위암보다 예후가 더욱 나쁘다. 복막이 위, 소장, 대장을 비롯해 간, 담낭, 췌장, 방광 등 복강 내 여러 장기를 싸고 있어 수술은 커녕 방사선치료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복막으로 가는 혈관이 많지 않아 항암제가 복막 안의 암세포까지 충분히 전달되지 못해 항암치료 효과도 떨어진다. 복막을 따라 암세포가 자라면 장이 붓고 주변 장기의 기능이 저하되어 치료를 지속하기 힘든 악순환이 시작된다.

◇ 전장유전체분석으로 위암에 드문 BRCA 유전자 확인…최적 치료법 찾아


권민석 아주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서씨에게 '전장유전체분석(WGS·Whole Genome Sequencing)' 검사를 권했다. 암조직에서 얻은 유전자를 분석해 암의 생장에 중요한 돌연변이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2주만에 나온 암유전체 프로필을 토대로 서씨에게 생긴 위암의 원인이 '브라카(BRCA) 유전자'였음을 알아냈다.

BRCA는 유방암을 뜻하는 'BReast CAncer'에서 따온 명칭으로 유전성 유방암과 연관성이 높다. 어머니가 난소암, 이모가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던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유전자검사에서 BRCA1 돌연변이를 확인하고 37살의 나이에 암 예방을 위해 양쪽 유방을 절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권민석 아주대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가 전장유전체분석 검사에 대해 설명 중이다. 사진 제공=아주대병원


BRCA1 또는 BRCA2 유전자에 변이가 있으면 유방암 외에도 난소암·전립선암·췌장암·대장암·담낭암 등 유전성 암에 걸릴 위험이 크게 증가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위암에서 BRCA 변이가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 의아해 하던 권 교수는 가족력을 조사하던 중 서씨의 50대 누나와 30대 조카가 BRCA 변이 관련 유방암 진단을 받았음을 확인했다. 암 병력이 없는 서씨의 50대 남동생도 WGS 검사 결과 BRCA1 유전자가 발견됐다. 아직 암이 발병하진 않았지만 유전성 암이 생길 확률이 매우 높은 고위험군임을 잡아낸 것이다.

권 교수는 “WGS 분석이 아니었다면 남성 환자에서 BRCA 유전성 위암을 의심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BRCA 돌연변이에 반응률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면역항암제를 병용 투여한 결과 암크기가 현저하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암을 일으킨 원인 유전자에 대한 정보가 치료성적 향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서씨의 남동생 역시 유전상담을 받고 정기 추적검사를 받으면서 BRCA 변이와 연관된 암 발생에 대비하고 있다.

◇ 아주대병원, 국내 최초로 실제 환자 진료에 WGS 기반 암 정밀진단 적용




아주대병원은 지난해 8월 국내 최초로 WGS 기반 정밀 진단 프로그램을 암환자 진료에 시범 도입했다. WGS은 질환 및 약물 반응성에 관한 유전적 요인을 총체적으로 연구하는 신기술이다. 2003년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료되고 30억 쌍으로 이뤄진 인간 게놈의 모든 염기서열이 밝혀진지 20년만에 기술, 비용의 한계를 넘어 정밀의료의 꽃이라 할 수 있는 WGS가 진료현장으로 들어온 것이다.

많은 병원들이 암조직 내의 수십~수백 가지의 표적을 한번에 검사하는 차세대유전자패널검사(NGS·Next Generation Sequencing)를 암환자에 적용하고 있다. 2017년 3월 일부 암종에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기 시작해 2019년 5월 전체 고형암으로 확대되면서 비용 부담도 크게 줄었다. 많은 전이암 환자들이 NGS에서 얻은 정보로 표적항암제를 선택하고 임상시험 참여 기회를 얻고 있다.

사진 설명


기존 NGS는 좁은 영역의 유전자만을 검사하기 때문에 0.1~1% 수준의 유전정보를 제공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WGS는 암세포 전체 유전자에 관한 정보를 통으로 읽어낸다. 약제의 치료반응을 예측해 최적의 치료법을 선정하는 것은 물론 암 발생 원인이나 암 가족력을 일으킨 원인 유전자를 찾을 수 있다. 여러 장기에서 종양이 발견됐을 때 원발암 또는 전이암 여부를 분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권 교수는 “20년 전만 해도 인간 유전체를 모두 읽는 시퀀싱에 천문학적 비용이 들었지만 시퀀싱 장비의 발달로 NGS와 비용 차이가 미미해졌다”며 “시범도입 기간 110여 명의 암환자를 통해 WGS의 활용 가능성을 검증했다”고 말했다.

◇ 4월부터 아주대병원 등 국내 주요 병원에 WGS 검사 전격 출시


실제 지놈인사이트가 시범사업에 참여한 아주대병원 의료진을 상대로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0%가 “WGS 결과가 임상 결정을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답했다. 보고서가 아닌 웹(web) 형식으로 유전체 정보를 제공하는 ‘캔서비전(CancerVision)’ 플랫폼에 대한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환자 입장에선 진료실에서 담당의사와 CT, MRI 영상을 보듯 생생한 암유전체 정보를 직접 눈으로 보며 치료과정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성공적으로 파일럿 테스트를 마친 지놈인사이트는 다음달 아주대병원 등 국내 주요 병원에서 WGS를 정식 출시한다. 국내 기업이 개발한 WGS 기반 암 정밀진단 프로그램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되는 것이다. 권 교수는 “암의 설계도를 보면서 진료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전체 암유전자를 분석해 정보를 종합하면 암진단과 치료의 효율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며 “연구와 진료활동에 매진하며 암환자들에게 최적의 치료성적을 높이는 데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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