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연예계 거물로 군림하던 쟈니 기타가와(喜多川)가 생전에 미성년 아이돌 지망생들을 성적 학대했다는 의혹이 BBC 다큐 폭로로 재점화했다.
기타가와는 2019년 87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전까지 일본 최대 연예 기획사 중 하나인 ‘쟈니스 사무소’를 이끌며 남자 아이돌 육성에 힘썼다. 특히 남성 4인조 ‘쟈니스’를 시작으로 57년간 ‘스마프(SMAP)’, ‘아라시’ 등 유명 아이돌 그룹을 무대에 올렸다.
하지만 기타가와는 생전에 아이돌 지망생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에 휩싸였고, 1999년 이를 폭로한 주간지와 소송전을 벌이기도 했다.
영국 BBC는 7일 ‘일본 J팝의 포식자’ 다큐멘터리에서 기타가와에게 성학대를 당했다는 피해자의 사연을 공개했다. ‘하야시’라는 가명을 쓰는 남성은 10대 시절 기타가와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15살 때 쟈니스 사무소에 이력서를 내고 오디션을 보면서 기타가와를 처음 만났으며, 이후 ‘기숙사’라는 곳으로 불려갔다고 말했다.
당시 기숙사는 기타가와의 자택 중 하나로, 수많은 소년이 함께 거주했다고 한다.
하야시는 “기타가와가 내게 목욕을 하라고 했다. 그는 내가 인형인 것처럼 내 온몸을 닦아줬다”면서 그러고는 기타가와가 자신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성범죄는 다른 상황에서도 일어났으며, 다른 소년들도 이를 알고 있었지만 ‘참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며 쉬쉬했다고 하야시는 회고했다.
그러면서 “기숙사에 있는 성인은 기타가와가 유일했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피해를 털어놓을 수 없었다”고 하야시는 덧붙였다.
하야시는 소년들이 성공하기 위해 침묵했을 것이라 주장했다. 그는 “성공을 거둔 소년들은 쟈니스 사무소에 들어간 순간 인생이 달라진 것”이라며 “그건 성범죄와 별개였다. 그들은 고마움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제 성인이 된 하야시는 “나는 일본에서만 살았고, 일본이 훌륭한 나라라고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아마도 내가 틀린 것 같다”고도 말했다.
기타가와의 성추문이 크게 불거지지 않은 것은 일본 언론과 기타가와의 아이돌 산업이 ‘상호 의존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라고 BBC는 분석했다.
쟈니스 소속 아이돌을 출연시켜야 언론사도 광고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또 언론이 쟈니스의 신인 아이돌을 홍보해주면, 정상급 아이돌에 접근하는 특혜를 받을 수도 있다.
일부 일본 언론이 기타가와의 성범죄를 고발하는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지만 대중의 침묵 속에 기타가와는 사망할 때까지 형사 기소를 모면했다.
BBC는 “일본은 공손함을 자랑으로 여기는 나라다. 무례함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면서 “이 때문에 성학대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는 것이 타인에게 부담을 주는 것처럼 비치는 분위기를 조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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