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고위공직자나 공직자 후보의 재산 및 병역 면제 사유 공개 범위를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공익을 목적으로 재산 내역과 병역 면제 사유 등 정보를 공개하는 과정에서 개인정보가 침해되고 있으니 이를 바로잡겠다는 취지다. 최근 공직자의 재산 및 병역 비리 등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정보를 축소 공개하는 방향이 논의되고 있어 반발이 예상된다.
12일 서울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개인정보위는 중앙대 산학협력단에 정책 연구를 맡긴 내용을 바탕으로 ‘개인정보보호 원칙에 따른 주요 침해 법령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여기에는 공직자의 질병으로 인한 병역 면제 사유를 가리고, 재산 내역 공개도 축소하자는 방안이 담겨있다.
개인정보위는 보고서 내용을 바탕으로 유관 기관과 함께 병역공개법 등 개정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안이 개정되면 그동안은 공직자가 질병으로 인해 병역을 면제받거나 전시근로역에 편입된 경우 후천성면역결핍증, 혈우병 등 일부 질병정보에 대해서만 사유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모든 질병에 대해 비공개가 가능해진다.
문제는 최근 뇌전증 등 허위 질병으로 인한 병역 면탈 사례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법안 개정이 검토되고 있다는 점이다. 병무청 등에 따르면 병역 기피 수법은 2012년 7종에서 2022년 47종으로 크게 늘었다. 이 중 최근 5년간 적발된 병역면탈 366건 중 약 60%가 고의로 체중을 조절하고, 정신 질환을 위장하는 등 가짜 질병을 내세워 병역 면제를 시도했다. 지적장애와 동공 장애로 위장해 병역을 면제받거나 혈압 수치를 의도적으로 높이는 방식으로 허위 진단서를 발급받는 사례도 줄줄이 적발되고 있다.
가짜 질병을 내세워 병역을 면제 받는 수법이 알려지면서 연예인·운동 선수·국회의원 등이 사회적으로 큰 질타를 받고 있는데도 정부 기관은 고위공직자의 사생활 보호를 앞세워 정보 공개 범위를 오히려 좁히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아울러 이번 정책 연구 보고서에는 공직자의 재산 신고 공개 내역을 축소하자는 내용도 담겼다. 개인정보위가 이 같은 내용을 검토해 법안을 개정할 경우, 앞으로는 고위공직자나 공직 후보자가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명도 알 수 없게 될 전망이다.
그간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는 공직자의 부정한 재산 증식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아파트 등 주택 ‘동·호수’ 정보를 제외한 나머지 주소를 모두 공개해왔다. 하지만 보고서에 적힌 방향으로 법안이 개정된다면 앞으로는 동·호수 정보를 넘어 공직자의 아파트 단지명도 알 수 없게 된다.
이에 대해 개인정보위는 보고서에서 “공직자의 ‘등록된 재산’ 내용은 관보 또는 공보를 통해 공개됨으로 공직자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제한 내지 침해가능성이 크다”며 “재산 공시 기능을 갖추는 선에서, 예컨대 아파트의 단지명까지 공개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있을 수 있고, 단지의 구성이 1개동으로 이루어진 경우 쉽게 주소를 특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소한의 정보만 공개하는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인정보위 관계자는 “2021년에 나온 정책 연구 보고서 내용은 작년에 이미 다 반영됐다”며 “올해 연구 보고서 내용도 유관 기관과 협의해 개정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인사혁신처도 고위공직자의 ‘주식백지신탁 심사제도’를 정비하는 등 개편에 나섰다. 이 제도는 고위공직자가 직무와 연관성이 있는 주식을 3000만원 이상 보유할 경우 이해충돌 방지를 위해 직접 매각하도록 하거나 금융기관에 백지신탁하도록 한다. 신탁을 받은 금융기관은 해당 주식을 60일 이내에 처분해야 한다. 이는 공정한 공무집행을 위해 도입됐으나 기업인 출신을 비롯한 민간의 우수 인재를 공직에 채용하는데 걸림돌이 돼 왔다. 인사혁신처는 이 같은 한계를 감안해 해당 제도가 2005년 도입된 후 약 18년만에 처음으로 개선 작업에 나섰다. 백지신탁 제도를 손질하더라도 공직자의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이 충돌하지 않는 선에서 조정돼야 한다는 점에서 개편 방향을 놓고 정교한 기획과 국민 의견수렴 과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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