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 추락의 원인은 ‘6년 만에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라는 대회 소개에서 찾을 수 있다. 4년 주기 대회지만 코로나19로 2년이 더해졌다. 참가에 의의를 두던 약체 국가들이 만만찮은 전력을 갖추는 등 6년간 많은 것이 바뀌었는데 한국은 흐름을 읽지 못했다.
13일 대회 1라운드 B조 호주-체코전에서 호주가 8 대 3으로 이기면서 한국은 주어진 4경기를 다 치르기도 전에 탈락하는 굴욕을 떠안았다. 체코가 호주를 잡았다면 복잡한 경우의 수를 따져볼 만했지만 행운도 한국 편이 아니었다. 4전 전승의 일본이 1위, 3승 1패의 호주가 2위로 8강에 진출했다. 한국은 호주에 7 대 8로 진 데 이어 일본에는 4 대 13으로 겨우 콜드게임 패배를 면했다. 세미프로 선수들로 구성된 체코(7 대 3 승)에도 고전했다.
돌아보면 첫 경기인 9일 호주전에 ‘올인’ 전략을 들고나가야 했다. 하지만 다음 날 있을 일본전을 신경 쓰느라 결과적으로 2경기 모두를 그르치고 말았다. 호주를 확실히 이기고 나서 일본전은 부담 없이 치른 뒤 하루 휴식하고 체코와 중국을 차례로 만나는 수월한 일정인데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서 일이 꼬였다.
일본은 한국 야구가 라이벌로 생각하는 팀이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생각과 현실은 많이 다르다. 미국 야구 통계 사이트 베이스볼얼머낵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출생 국가별 메이저리거는 일본이 7명, 한국이 6명이다. 숫자만 보면 비슷하지만 질에서 차이가 난다. 일본은 2021년 리그 최우수선수(MVP) 오타니 쇼헤이(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와 통산 95승 베테랑이자 지난해에도 16승을 올린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 등 거의 전부가 즉시 전력감이다. 2021년 도쿄 올림픽 금메달을 딴 대표팀에서 4번 타자로 활약한 스즈키 세이야(시카고 컵스)가 부상으로 WBC에서 빠졌는데도 일본은 두꺼운 선수층을 자랑하며 전승을 달렸다. 한국에도 김하성(샌디에이고)과 최지만(피츠버그) 등이 있지만 오타니 등과 비교하면 무게감이 떨어진다. 최지만은 소속팀 반대로, 한국계 롭 레프스나이더(보스턴)는 아내 출산 등의 이유로 함께하지 못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허약한 마운드의 민낯을 드러냈다. 경험 많은 김광현(SSG)·양현종(KIA)을 곽빈(두산)·정철원(두산)·김원중(롯데)·소형준(KT)·정우영(LG)·김윤식(LG)·구창모(NC) 등 영건들이 받치는 그림을 기대했으나 김광현과 양현종부터 흔들렸고 젊은 투수들은 낯선 무대에서 자기 공을 던지지 못했다.
가뜩이나 야구 저변 약화에 시달리는 한국은 WBC 1라운드 탈락으로 야구 붐도 물 건너 보냈다. 초대 대회 4강, 2회 대회 준우승 신화를 잊고 언더독이라는 현실 인식에서 새롭게 출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늘 ‘국민 스포츠’로 사랑받지만 국제 경쟁력은 계속 떨어지는 한국 야구다. WBC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과 2021년 도쿄 올림픽 노메달이 한국 야구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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