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에 600만 원이 넘는 폐암약 ‘타그리소’의 1차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달라는 국민 청원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회부됐다. 타그리소는 글로벌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한 3세대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EGFR) 티로신키나아제억제제(TKI)다. ‘이레사, 타쎄바’ 등 1세대 TKI를 복용하다 EGFR T790M 돌연변이가 생긴 전이성 비소세포폐암의 2차치료제로 쓰인다. 한 해 1065억 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수요가 많지만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진단 후 1차치료제로 처방받을 경우 비급여다. 2018년 12월 허가 이후 수차례 급여등재를 시도했지만 임상적 유용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번번이 암질환심의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국내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70%는 3~4기에 발견된다. 진단 당시 뇌전이 비율이 24%, 시간이 지나면 50%까지 높아지는데 1·2세대 약물은 뇌혈관장벽 투과성이 떨어져 3세대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 타그리소는 글로벌 3상임상에서 무진행생존기간(mPFS·종양 크기가 더 나빠지지 않은 채 생존한 기간) 18.9개월을 기록하며 대조군인 1세대 약물 대비 통계적으로 유의한 개선 효과를 입증했다. 전체생존기간(mOS)은 38.6개월로 대조군대비 6.8개월 연장됐다.
하지만 한국인이 포함된 아시아인 분석 결과만 보면 mPFS 16.5개월로 대조군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전 세계 65개국 이상에서 1차치료 급여권에 오른 타그리소가 4년 넘게 국내 급여 문턱을 넘지 못한 이유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은 전체 비소세포폐암 중 EGFR 변이가 40~55%를 차지한다. 그만큼 건보재정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뒤늦게 보험 적용을 받은 대만은 타그리소 1차치료의 보험 적용대상을 뇌전이가 있거나 EGFR 활성변이 중 'Exon19 Del'이 확인된 경우로 제한했다. 상대적으로 mPFS 개선 효과가 떨어지는 L858R 변이를 보험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타그리소가 오는 22일 암질심에 재상정된다는 소식에 많은 폐암 환자들이 간절히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정부가 항암제 신속 등재와 평가기간 단축을 약속하면서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높다. 하지만 연일 쏟아지는 고가약과 제한된 건보 재정 탓에 정부의 고심도 깊다. 타그리소의 급여확대 도전이 또 불발될 경우 남은 희망은 국산 신약 '렉라자'다. 타그리소와 같은 3세대 약물인 렉라자는 글로벌 임상에서 뇌전이 환자는 물론 아시아인 대상으로도 일관되게 높은 mPFS을 입증했다. 2차치료 적응증 기준 보험약가도 타그리소보다 저렴한 편이다. 다만 해당 결과를 토대로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으려면 올 하반기 께나 가능할 전망이다. 하루하루가 소중한 폐암 환자들에게는 기나긴 시간이 될 전망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