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신 아들 학교폭력’을 막을 법안들이 이미 제21대 국회에 발의돼 있었으나 수년째 상임위에 잠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며 발의된 법안 수 자체는 많아졌지만 정작 법안이 통과돼 시행되는 수는 줄었다. 정치권이 관련 이슈가 터질 때만 ‘반짝 발의’를 해 이목을 끄는 데 이용한 뒤 나 몰라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4일 서울경제가 제21대 국회에 제안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관련 개정안을 전수조사한 결과 2020년 6월부터 약 3년간 39건이 발의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원안이 가결된 것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전문가 의견을 듣도록 규정한 단 한 건(2%)에 불과했다. 가결 법안과 유사해 폐기된 2건과 자진 철회 1건을 제외하면 아직도 35건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많이 발의된 법안은 ‘사이버폭력’과 관련된 내용이다.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학교폭력이 수년째 문제가 되고 있지만 현재 학폭법에는 사이버폭력의 구체적인 유형조차 규정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교묘하게 이뤄지는 다양한 형태의 사이버폭력에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여야 할 것 없이 14건의 법안이 발의됐으나 전부 소관위 심사에 그쳐 있다. 이 기간 아이들은 사이버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수사본부장에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학폭 사건과 연관되는 법안도 있으나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학교폭력과 관련된 법안은 졸업과 동시에 삭제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폐기하자는 법안이 이미 지난해 3월 발의된 바 있다. 또 피해자가 보조인(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경우 국선보조인을 둘 수 있게 한 조항도 있다. 정 변호사의 아들은 학교폭력 전력이 있음에도 서울대에 입학했고 그가 졸업한 반포고에서는 관련 생활기록부 기록을 삭제했다. 또 재판을 의도적으로 장기화하며 피해자의 고통도 지속됐는데 정 변호사는 ‘변호사가 시키는 대로 했다’고 변명해 논란을 빚었다.
해당 논란 이후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1명은 가해자가 행정심판 청구 및 집행정지를 신청할 경우 피해 학생 보호 조치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점을 보완한 법을 이달 9일 발의했다. 하지만 야당 대표 수사나 강제징용 배상안을 둘러싼 정쟁으로 인해 언제 통과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 밖에도 장애 학생에 대한 괴롭힘이나 스쿨미투(me too) 보호 방안, 제3자가 학폭 신고를 하는 경우 이에 대한 보복 조치를 처벌하는 법안도 있으나 역시 국회 통과는 요원하다.
학폭 법안의 국회 계류 현상은 갈수록 더 심화되고 있다. 학폭법 관련 개정안은 △20대 2건 통과 (37건 중 5%) △19대 4건(39건 중 10%) △18대 4건 (24건 중 16%) 등으로 최근 들어 통과 비율이 낮아지고 있다. 학폭과 관련해 사회적 관심의 목소리가 높아지며 입법 자체는 증가하고 있지만 정쟁으로 통과되지는 않는 상황인 것이다.
‘학폭 전문 1호 변호사’로 꼽히는 노윤호 변호사(법률사무소 사월)는 “학폭에 대한 입법 조치가 없으면 학교는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에 대한 조치를 재량으로 처리하게 되고 이 경우 가해 학생 학부모의 반발을 미연에 차단하기 위해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경우가 많다”며 “현재도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을 학교 측에서 즉시 분리할 수 있는 것은 최장 3일인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정 이슈가 발생한 뒤 입법안이 나오지만 결국 통과가 안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정치권이 입법 속도를 높여 현실에 적용되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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