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언론이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주 최대 69시간제’와 함께 장시간 노동 문화에 따른 과로사 문제를 소개했다. 이 매체는 과로사를 한국어 발음 그대로 옮긴 ‘kwarosa’라고 표현해 눈길을 끈다.
14일 호주 ABC 방송은 ‘한국, 주 69시간 근무제 제안. 호주나 다른 아시아 국가와 비교하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 정부는 노동자들이 일주일에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개혁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이어 해당 개혁안은 한국에서 저출산 현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매체는 “많은 여성들이 일과 육아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이 개편안이 노동 유연성을 제고하고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을 개선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또 한국은 야당인 민주당이 집권하던 2018년 ‘주 52시간제’를 도입했는데, 이를 69시간으로 늘리기 위해서는 야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국회에서 통과돼야 하지만 야당이 반대한다고 덧붙였다.
ABC는 “한국인들은 지금도 다른 나라와 비교해 오래 일한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인은 1년에 평균 1915시간을 일해 OECD 평균(1716시간)을 크게 넘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의 이런 근로 문화 때문에 ‘Kwarosa(과로사)’라는 말이 있다며 “이는 극심한 노동으로 인한 심부전이나 뇌졸중으로 돌연사하는 것을 일컫는 단어”라고 설명했다.
ABC는 일본에서도 한국의 과로사와 같은 단어인 ‘카로시(kasroshi)’라는 단어가 있고, 중국에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6일 일한다는 ‘996’이라는 말이 쓰일 만큼 노동 시간이 길다고 전했다. 양국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일본 40시간, 중국 44시간으로 한국 39시간보다 길다.
반면 호주는 주당 최대 근무 시간은 38시간이다. 한국과 달리 연장 근무의 상한선은 없지만 근로자들은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초과근무는 거부할 수 있어 근로 시간은 아시아 국가에 비해 길지 않다.
코니 정 호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대학 부교수는 아시아의 근로 시간이 긴 것에 대해 “서양 사회는 더 개인주의적이고 비(非)계층적인 경향이지만, 아시아는 집단주의적이고 위계적인 문화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제인 멘지스 호주 선샤인코스트 대학 부교수는 “호주와 같은 서방 국가에서는 수십 년 동안 축적된 고용 보호책 더 많이 갖춰져 있다”며 재택근무제와 주4일제를 언급했다.
최근 호주 상원은 노동당 정부에 워라밸을 위해 현행 주5일 근무제를 주4일제로 바꿔야 한다는 요지의 권고안을 제안했다. 주5일제의 급여와 생산성 수준을 100% 유지한 상태에서 노동시간을 20% 줄여 주4일만 근무한다는 내용이다.
멘지스 부교수는 “이런 아이디어들은 호주 노동 문화의 핵심적인 특징이 되고 있다”며 서방 국가에서 이뤄진 주4일제 실험들의 성과를 언급했다. 실제로 지난해 영국에서 진행된 주4일제 실험 결과, 경영 생산성과 직원 복지 모두 개선됐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영어 교사로 일했던 크리스틴씨(26)는 ABC와의 인터뷰에서 장시간 노동이 워라밸을 무너뜨릴 뿐 아니라 업무의 질을 악화시켜 오히려 생산성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양국에서 퇴근 시간을 넘겨 장시간 일하다 정신 건강이 나빠지는 동료들을 봤다는 크리스틴씨는 “마쳐야 할 일이 없는데도 체면을 위해 늦게까지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며 “이 같은 태도는 일을 우선시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근무 환경이 업무의 질을 오히려 나쁘게 한다며 “과로와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정말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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