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넘게 출판사와 법정 분쟁을 해오던 이우영 작가가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하자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제 2의 구름빵’ 사태이자 출판사의 불공정계약이라며 비난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지난 11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이 작가는 출판사 형설앤 측과 수년째 1심 재판을 진행 중이었다. 아내 이지현씨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재판에서 희망적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고 있었는데 (결심이) 계속 지연돼 크게 낙담했다”며 “사망 이틀 전 열린 재판에서도 결론이 나지 않자 남편이 밤늦게 취해서 들어왔다. 삶이 리셋된 기분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 유족 등에 따르면, 만화 검정고무신은 형설앤 측이 2019년 6월 이 작가와 동생 이우진 작가 등을 상대로 2억86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면서 분쟁이 시작됐다고 한다.
형설앤 대표 장모씨는 2007~2010년 이씨 형제를 포함한 검정고무신 원작자들과 5차례의 계약을 체결했는데 여기에 ‘일체의 작품 활동과 사업에 대한 모든 계약권을 장씨에게 양도한다’ ‘원작물 및 그에 파생된 모든 이차적 사업권을 포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이후 이우영 작가가 만화 속 캐릭터를 개인 창작·출판 활동에 활용하자 형설앤 측은 고소에 나섰다. 작가의 모친도 운영하고 있는 체험 농장에서 검정고무신 애니메이션을 틀었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했다고 유족 측은 말했다.
유족들은 장씨와 계약을 체결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검정고무신 관련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정산되는지 투명하게 전달받지 못했다고 했다. 유족 측은 출판사 측이 이우영 작가에게 정산한 총액은 1000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19년 6월 시작된 법적 분쟁이 아직 1심 재판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유족들은 작가가 그간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자신이 창조한 검정고무신 캐릭터로 사업은커녕 창작도 마음껏 할 수 없었던 이 작가는 신인이 참가하는 만화 공모전에 응모해 겨우 생계를 꾸려나갔다고 한다.
이우영 작가는 사망 이틀 전 법정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저에게 검정고무신은 제 인생 전부이자 생명”이라며 “창작자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출판사 측은 지난해 대형 로펌 법무법인 태평양을 선임해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정당한 법적인 계약에 따랐다는 입장이다.
출판사 관계자는 “공동 저작자로서 이우영 작가가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활용한 작품으로 거둔 부당 이익을 반환하라는 취지의 소송”이라고 했다. 사업 수익과 관련해서는 “계약된 지분율에 따라 분기마다 지급하고 있다. 수익 내역도 모두 공개하고 있다”고 했다. 과거 맺은 계약에 따라 원작자들로부터 저작물 및 2차적 사업권을 위임받아 정당하게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태평양 측도 홍보팀을 통해 “이 사건은 저작권 관련 사업 계획서에 관한 수익금 분배 등의 분쟁이며 저희는 특별히 말씀드릴 사항이 없다”라고 했다.
작가의 사망 소식을 계기로 온라인에서는 지난 2020년 ‘구름빵’ 사태를 떠올리게 된다는 반응도 나온다. 그림책 구름빵의 작가 백희나씨가 한국인 최초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문학상’을 받았는데, 작가가 구름빵으로 얻은 수익이 1850만원에 그쳤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일었던 사건이다.
구름빵은 2004년 출간 후 40여만부가 팔렸고 어린이 뮤지컬과 TV 애니메이션 등 2차 콘텐츠로도 제작되었다. 작가는 출판사를 상대로 소송도 했지만, 법원은 출판사 측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당시에도 “갑질에 의한 불공정 계약” “출판사 불매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분위기가 일었다.검정고무신을 둘러싼 저작권 분쟁도 ‘제2의 구름빵 사건’이 될 조짐이 있다. 출판사가 작가를 상대로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을 맺은 것 아니냐는 것이다.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청년 층을 중심으로 검정고무신 애니메이션과 관련 굿즈, 도서를 불매하겠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공정’하지 못한 계약으로 원작자가 세상을 등진 것에 대해 청년들은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작가와 저작권 계약을 맺은 형설앤 장 대표가 운영하는 출판회사 명단을 공유하며 불매를 독려하고, 넷플릭스에 올라온 ‘추억의 검정고무신’을 보지 않겠다는 움직임도 나온다.
이 작가를 추모하는 젊은 독자들은 “그림이 아니라 원작자의 인생을 훔친 불공정 계약” “사람이 죽어야만 이슈화되고 공론화되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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