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에서 시작된 금융 부실 리스크가 글로벌 대형 은행 등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스위스 크레디트스위트(CS) 주가가 15일 취리히 증시에서 장중 30.8%까지 추락했다가 장 막판 중앙은행의 지원 방침 발표로 24.2% 하락으로 마감했다. 이로 인해 이날 유럽 증시는 3~4%가량 급락했다. CS의 위기는 지난해 11월 지분 9.9%를 인수해 최대 주주가 된 사우디국립은행이 추가 유동성 공급을 거부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 9대 투자은행(IB)’ 중 하나인 CS가 무너지면 미국 중소 은행의 파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파장이 우려된다.
심각한 것은 근본 원인이 급등한 물가를 잡기 위해 각국이 공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린 데 있다는 점이다. 기준금리의 급격한 인상으로 유동성이 마르고 채권 금리가 오르면서 보유 자산의 평가 가치가 하락해 쌓인 부실이 금융권에 연쇄 충격을 불러오고 있다. 침체 국면의 거시 경제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국제 신용 평가사 무디스는 최근 미국의 전체 은행 시스템에 대한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한국의 금융 시스템에도 급증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과도한 가계 부채, 늘어나는 좀비 기업, 저축은행의 연체액 증가 등 불안 요인들이 적지 않다. 부동산 PF 대출은 최근 몇 년 새 급증했는데 부동산 가격 급락으로 부실 위험을 보이고 있다. 저축은행의 연체율은 지난해 3분기 3%를 초과해 6년 만에 최악을 기록했다. 금융위원회는 16일 은행의 건전성 강화를 위해 평소에 자본을 적립해두는 경기대응완충자본적립제도의 현실화 등 제도 개선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유동성 위기는 순식간에 닥칠 수 있다. 지금은 스마트폰 계좌 이체로 위기설이 불거진 지 36시간 만에 은행이 파산하는 ‘폰 뱅크런’ 시대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을 24시간 살피고 위기 발생 시 즉각 대응할 수 있는 행동 계획을 마련하는 등 ‘금융 리스크 전이’에 대비한 만반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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