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의 근로시간제 개편안이 장시간 근로 우려에 휩싸인 가운데 역설적으로 지난해 연간 근로시간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근로자가 근로시간 감축을 현장에서 체감하기 어려운 데다 일종의 질 낮은 일자리로 고용시장이 재편되고 있다는 점이다. 경기 악화에 고령화와 저출산 기조도 뚜렷해 ‘빛바랜 근로시간 감축’에 대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20일 고용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근로시간은 1904시간으로 전년보다 0.8% 감소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월평균으로는 159시간, 주간 단위로는 36.6시간꼴로 일을 한 셈이다.
정부는 ‘장시간 노동국가’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지속적으로 근로시간 감축 정책을 폈다. 대표적으로 2018년부터 주 52시간제가 도입됐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사태의 영향 속에 관공서 공휴일 확대와 같은 일부 제도도 변했다. 그 결과 연 근로시간은 2017년 1996시간으로 처음으로 연 2000시간대가 깨졌다. 2021년(1928시간)을 제외하고 매년 평균 1%대 감축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근로시간이 통계적으로 줄더라도 현장에서 체감을 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하다는 점은 문제다. 고용시장 구조를 보면 공정한 보상과 휴식을 중시하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의 경우라면 체감도가 더 낮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근로시간 감축 배경에는 60세 이상 취업자가 고용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 증가 영향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의 ‘2022년 고용동향 특징’ 보고서에 따르면 60세 이상 취업자가 전체 취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20.9%까지 올랐다. 2015년 13.9% 대비 7%포인트나 증가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20대 이하와 30~40대 비중은 유지되거나 되레 감소했다. MZ세대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낮아졌다는 것이다.
특히 60세 이상 취업자는 대부분 단시간 일자리로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2017년까지 10%대 후반대에 머물던 주 36시간 미만 근로자는 지난해 30.2%로 처음 30%대를 돌파했다. 여기에 MZ세대의 직업 선택 기준도 단시간 일자리 수요에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통계청의 2020년 청년패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업 선택 기준(5점 만점)에서 성취(3.91점)가 경제적 보상(3.98점)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게다가 인정(3.83점), 심신의 안녕(3.82점), 자율 및 고용 안정(3.79점), 지적 추구(3.72점) 등 주관적 항목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MZ세다가 차츰 ‘직업=돈벌이 수단’ 식의 과거 직업관에서 벗어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근로자의 장시간 노동에 따른 건강권 보장과 근로시간 감소에 따른 저임금(수당)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마주한 상황이다. 지난해 소비자물가를 반영한 근로자의 실질임금은 359만 2000원으로 전년 대비 0.2% 줄었다. 연간 실질임금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통계 작성 이래 처음이다. 보고서는 “최근 근로시간 감소는 산업구조 변화, 비대면, 플랫폼처럼 새로운 사업 모델도 등장했기 때문”이라며 “지난해 저숙련·저임금 일자리 공급 부족이 나타났고 앞으로 디지털 인력의 숙련 불일치 문제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