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계는 군사·안보 동맹에서 출발해 가치 동맹을 넘어 이제는 경제·기술 동맹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원자력발전이나 반도체, 배터리, 정보기술(IT), 바이오 분야로 협력 관계를 확대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낸 최중경 한미협회 회장은 2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동맹의 미래를 이같이 설명하면서 “미국의 기술력·자본력과 우리의 노동력, 제조 능력이 결합하면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만큼 충분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다음 달 미국에서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의 반도체지원법 등 우리에게 불리한 정책의 개선 방안을 놓고 협상해야 한다”면서도 “한미 상설 통화 스와프 체결이나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 권한 확보도 협상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과 관련해 “경제팀은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크레디트스위스(CS) 유동성 위기를 예의 주시하면서 선제적이고 과감한 안정화 조치로 위기 전이 차단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올해 70주년을 맞은 한미 동맹의 의미는 무엇인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70주년을 맞아 한국은 일방적 수혜국에서 벗어나 미국으로부터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주요 파트너로 인정받고 있다. 전 세계에서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나라가 거의 없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그만큼 양국 관계는 특별하다. 최근 미국이 중국의 부상에 맞서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전략’으로 돌아서면서 한국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한층 커졌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을 둘러싼 논란이 크다.
△미래 전쟁의 성패는 로봇과 인공지능(AI)에 달려 있다고 한다. 뛰어난 반도체를 쓴 성능 좋은 무기로 더 정확하고 빠르게 적을 타격해야 이길 수 있다. 미국은 이를 위해 정교한 반도체 기술을 독점하고 중국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입장을 세웠다. 미국에 더 많은 반도체 공장을 짓도록 유도하고 네덜란드의 반도체 노광 장비 기술을 대체할 신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미국이 반도체 핵심 분야에서 기술적 우위를 독점하겠다는 뜻이다. 특히 한국 반도체 기업의 영업 기밀까지 공개하라는 것은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관련 기술의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관리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에 대응해 우리 정부의 적극적 외교력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은데.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를 일컫는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가 갈수록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이 중국의 위협을 그만큼 심각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력은 경제력이나 산업 능력에 좌우된다. 미국은 중국이 경제·산업 능력에서 미국을 추월하지 못하도록 기술이전을 막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한국이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이다. 프랑스나 일본 등도 마찬가지로 타격을 받는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부가 IRA와 관련해 통상 외교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우리만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다음 달 한미정상회담에서 주로 논의돼야 할 의제는 무엇인가.
△크게 볼 때 미국이 나아가는 방향에 협조하면서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다른 현안을 풀어가는 ‘투트랙 전략’을 취해야 한다. 무엇보다 미국에 상설 통화 스와프부터 요구해야 한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로서는 항상 외환 위기에 직면할 위험에 노출돼 있다.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와 일본 수준의 우라늄 농축 권한을 인정받아 안보 족쇄를 푸는 것도 필요하다. 일본은 이미 우라늄의 20% 미만 농축을 허용받아 자체 생산도 가능하다. 우리도 군사 목적이 아닌 범위에서 저농축우라늄 기술 확보가 가능하도록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군 현대화 차원에서 미국산 정밀 정보시스템 확보도 시급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국빈 방문 기간에 어떤 점을 중시해야 하는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미 양국이 상호 신뢰 및 동반자 관계를 확대·강화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사실 그동안 한미 관계가 많이 흔들리지 않았나. 지난 정부에서 과도한 친중(親中) 노선으로 흔들렸던 한미 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이제는 한미 관계가 ‘행동하는 동맹’으로 진화해야 한다. 안보 동맹을 넘어 경제·산업·기술 동맹으로 가는 초석을 다지는 정상회담이 되기를 기대한다.
-한미 간 경제 협력에서 유망한 분야를 꼽는다면.
△클린 에너지가 가장 유망하다. 특히 원자력 분야의 경우 웨스팅하우스와의 갈등만 해소한다면 양국 간에 분명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반도체는 물론 자동차나 배터리·IT도 협업을 통해 글로벌 시장 공략이 가능한 분야다. 제약·바이오 역시 성장 가능성이 아주 높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한미 협력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일 것이다. 특히 연구개발(R&D) 분야에서 성과를 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국만 가능한 분야를 개척하고 경쟁국이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이제는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효력이 다했다고 한다.
△안미경중은 예전에도 그랬지만 전혀 먹히지 않는 구호다. 무엇보다 안보와 경제는 같이 가야 한다. 한국과 중국은 반제품 수출 가공 등 상호 의존형 산업구조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졌다. 한국의 대중 수출 비중은 한때 26%를 넘어서기도 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고 하듯이 시장을 다양화하고 분산해야 한다는 권고를 실행에 옮겨야 한다. 한국이 미중 관계에서 일정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문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평화롭고 조화로운 세계를 실현한다는 차원에서 중국을 설득하는 노력도 해야 할 것이다.
-미중 패권 전쟁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는가.
△과거 냉전 시대에 옛 소련의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의 50%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중국의 구매력 기준 경제 규모는 이미 미국을 넘어섰다. 미국이 가진 무기는 결국 기술 통제밖에 없다.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의 경고처럼 신흥 강대국과 기존 강대국 간 갈등이 전쟁으로 이어지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미국은 절대 2등이 1등을 넘어서는 사태를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이 현재의 태도를 유지한다면 위험한 상황이 닥칠 우려가 크다.
-윤석열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는데.
△현 정부가 추진하는 한일 관계 개선은 비록 장단점이 있지만 우리가 갈 수밖에 없는 길이다. 한반도 유사시 한미 연합군이 이기려면 일본의 도움이 뒷받침돼야 한다. 한미일 공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얘기다. 역설적이지만 일본의 군사 대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도 한미일 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는 혹시 모를 일본의 불합리한 행동을 막는 수단이기도 하다. 정부의 고육지책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위대 군홧발’식으로 한일 관계 개선을 비난한다면 올바른 해법을 찾기 어렵다.
-국제 외교가에서 한국이 주요 8개국(G8)에 포함돼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얼마 전 한국이 G8에 포함돼야 한다는 제안이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실렸다. 경제 규모나 군사력 측면에서 실현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본다. 한국과 호주·스페인 등이 유력 후보군인데 한국이 가장 앞서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고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다. 한국이 포함된 G8 구성이 유럽 4개국과 북미 2개국, 아시아 2개국 등 지역 균형을 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설득력이 크다. 역시 한국이 자연스럽게 G8의 일원이 되려면 일본과의 원만한 관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팀을 평가한다면.
△지금 경제 여건의 문제는 우리만 잘해서 풀 수 있는 게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공급망 재편 및 혼란, 금리 인상 등에 따른 외부 요인의 영향이 훨씬 크다. 지금은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살아남는 작전을 펼쳐야 할 때다. 우리 힘으로 거대한 흐름을 바꿀 수 없으니 견뎌내는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경제팀이 잘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금융 분야에서는 당국의 선제적 대처가 절실하다. 미국 당국도 SVB 파산 사태를 맞아 적극 개입하고 있지 않나. 외부 요인에 의해 시장이 흔들리면 정부가 적극 개입해 돈이 돌도록 해줘야 한다. 금융 당국이 윤리 선생처럼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시스템 리스크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는 얘기다. 경제팀은 금융시장 동향에 각별한 경계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시장에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금융 당국의 은행 경영 개입도 논란을 빚고 있는데.
△기업과 서민들은 고금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대출이자를 높여 부담을 안겨주는 행태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를 바로잡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윤 대통령의 지적처럼 독과점이 있는 분야에서는 정부가 당연히 개입해야 한다. 이는 경제학 이론으로도 정당한 조치다.
-우리나라의 경제정책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할 분야는.
△지금처럼 불투명한 경제 상황에서는 기업들의 적극적 투자를 유도하기 힘들다. 기업들은 몸 사리기에 바쁘다고 한다. 결국 금융시장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정부가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재정도 경제를 살리고 미래 성장 동력을 키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He is…
1956년 경기 화성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하와이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행정고시 22회로 공직에 들어섰으며 기획재정부 1차관과 필리핀 대사, 청와대 경제수석을 거쳐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을 거쳐 현재 한미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위싱턴에서는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 ‘역사가 당신을 강하게 만든다’ 등이 있다. ‘청개구리 성공신화’는 이라크 정부에 의해 아랍어로 번역·출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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