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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근로 시간 개편과 기업 역할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최인철 교수




개인의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일에 관한 중요한 결정에서 정작 개인이 소외되고 있다는 사실은 대단한 모순이다. 무슨 직업을 가질 것인지, 어느 도시, 어느 국가에서 직장 생활을 할 것인지, 일의 대가로 보수를 얼마나 받을 것인지, 몇 시간 일할 것인지 등을 자기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개인은 타협하거나 수용할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는 현실임을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이런 의사 결정에 자신의 의지가 최대한 반영되기를 소망한다. 인간에게 일이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행위만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를 규정하는 정체성의 수단이며 평생 관계 맺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는 사회성의 도구이고 삶에 대한 자신의 도덕과 철학을 실현하는 의미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이란 개인의 건강과 행복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행복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 일에 대한 중요한 결정이 돈에 의해서만 이뤄질 때 우리는 불쾌해한다. 아무리 돈과 생산성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정체성·관계·의미와 같은 일의 비경제적 요인들까지 고려하고 싶어한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가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살고 있는 것 같은 혼돈과 자괴감 속에 살고는 있지만 돈은 좋은 삶의 수단일 뿐 목적은 될 수 없다는 신념을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해 환영과 우려의 소리가 동시에 들려온다. 환영하는 이유도 우려하는 이유도 근거가 있다. 생산성과 수입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환영할 이유가 충분하고 근로자의 건강과 워라밸 관점에서 보자면 걱정할 이유 역시 가득하다.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대통령이 개편안의 보완 검토를 지시했다. 시대가 바뀌면 그리고 애초 예상보다 효과가 훨씬 좋거나 나쁘다고 판가름 난다면 이번 개편안은 다시 수정될 것이다. 이처럼 ‘실험’의 성격이 강한 안이 모두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서는 기업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기업이 근로시간 유연화를 경제적 관점으로만 접근하지 말고 구성원의 건강과 행복 관점으로도 접근해주기를 바란다. 정부가 제시한 것 이상으로 구성원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장치들을 마련해 그들을 안심시켜주기를 바란다. ‘시간’이라는 구성원의 가장 중요한 자산을 더 사용하는 만큼 나중에 몰아서 쉴 권리를 회사의 자존심을 걸고 지켜주기를 바란다.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이유로 휴식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다면 이는 법 준수 여부를 떠나 혹시나 하는 불안과 의구심에도 회사를 믿고 동참한 구성원들의 인격을 훼손하는 일이 될 것이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근로시간 연장을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회사가 돼주기를 희망한다. 효율적인 조직 문화와 기술 혁신을 통해 주 4일제와 같은 실험도 과감하게 시도해 보기를 희망한다. 구성원의 행복을 측정하고 관리하는 공식 조직을 만들어 구성원과 가족의 삶을 돕는 일에 국가보다 훨씬 더 앞장서는 회사가 돼주기를 희망한다.

무엇보다 구성원이 일하는 이유가 돈만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 근로시간 문제를 돈의 관점으로만 접근하지 않는 근사하고 멋진 회사가 돼주기를 진심으로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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