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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 재발 원인 '미세 잔존암' 피 한방울로 잡아낸다

[메디컬 인사이드] 김태원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

0.5cm 이하 종양은 발견 힘들어

1·2기 대장암도 20~30%는 재발

혈액 속 '순환DNA' 확인 검사로

조직채취없이 미세암 탐지 가능

보조항암화학요법 결정에 도움

대장암 3기는 수술 후 혹시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암세포를 치료하고 재발을 예방하기 위해 '보조항암화학요법'을 받는 게 표준치료법이다. 이미지투데이




“수술이 잘 되었는데, 독한 항암치료를 꼭 받아야 하는 건가요?”

맞벌이하는 아들 부부를 대신해 손주를 돌봐주던 서경자(65·여)씨. 손주가 자라면서 힘이 부치는 탓인지 전에 없던 허리 통증을 느꼈다. 근육통이려니 생각하고 물리치료를 받으며 버텼지만 몇 달째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동네 의원을 찾은 서씨는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는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부랴부랴 서울아산병원 외래진료를 잡고 대장내시경과 전산화단층촬영(CT) 검사를 받은 결과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았다.

대장암 3기는 간, 폐, 복막 등으로 원격 전이되진 않았지만 인접 장기나 림프절에 전이된 상태다. 다행히 서씨는 대장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이 가능한 상태였다. 수술 일정도 비교적 빨리 잡혔다. 주치의로부터 수술이 잘 되었다는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안정을 되찾은 서씨에게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혹시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암세포를 치료하고 재발을 예방하기 위해 '보조항암화학요법'을 받아야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봤던 드라마 속 암환자가 머리카락이 빠지고 구토를 하던 광경이 떠올라 겁이 난 서씨는 항암치료를 받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하지만 수술까지 받았는데 암이 재발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건 더욱 끔찍했다.

◇ 고령화·식습관 서구화로…대장암 환자 급증세


고민하는 서씨에게 주치의는 “치료를 잘 받으면 3기 대장암도 생존율이 80%가 넘는다”며 '액체생검(liquid biopsy)' 결과를 보고 항암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대장암 재발 여부를 꽤 높은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는 검사가 최근 도입됐다는 것이다. 주치의는 “내시경 등을 통해 대장 점막 일부를 떼어내는 조직검사와 달리 혈액으로만 진행되는 검사여서 비교적 간편하고 2주 정도면 결과가 나온다”며 “검사 결과 대장암 재발 위험이 높지 않다고 판단되면 보조항암화학요법을 생략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소개했다.



대장암은 국내에서 세 번째로 많은 사망자를 낳는 암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국내 대장암 사망자는 인구 10만 명당 17.5명으로 폐암(36.8명)·간암(20.0%) 다음으로 많았다. 2005년 12.5명과 비교하면 대장암 사망률이 16년새 39% 이상 뛰었다. 과거에는 가공육·붉은 육류를 많이 섭취하는 서양인들에게 호발하는 암이라 여겼지만 인구 고령화와 식습관 변화 여파로 한국의 대장암 발병률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대장내시경 등을 통해 조기 진단하는 환자들이 많아지며 5년 생존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 수술 후 남아있는 ‘미세잔존암’ 대장암 재발 근원




김태원 서울아산병원 암병원장(종양내과 교수)은 “전이가 없는 조기 대장암은 수술만으로 치료가 가능한 경우가 많다”며 “전이됐더라도 전이 부위가 많지 않으면 수술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수술 후 남아있는 ‘미세잔존질환(MRD·Minimal Residual Disease)’이다. 수술을 통해 육안으로 보이는 암을 모두 제거했더라도 원래 있는 종양 외에 퍼져있는 종양 크기가 0.5cm 이하로 매우 작다면 발견할 수 없다. 비교적 조기에 발견된 1~2기 대장암도 수술 후 재발될 수 있는 이유다.

김태원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가 대장암 치료에서 ‘액체생검’ 활용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아산병원


학계에서는 대장암 1기 혹은 2기 초반까지는 고위험군이 아닌 이상 수술 후 보조항암화학요법이 권고되지 않는다. 다만 서씨와 같은 대장암 3기부턴 보조항암화학요법을 받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확률상 수치일 뿐 첫 진단 시 병기만으로 재발 여부를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김 교수는 “대장암 1기 환자의 20%, 2기는 30% 가량이 수술 후 재발한다고 알려졌지만 가이드라인에 따라 치료를 하더라도 1기에서 5%, 2기에서 10~15% 정도는 재발한다”고 설명했다. 아주 초기 대장암으로 판단되어 보조항암요법을 진행하지 않았는데 재발하거나 반대로 2기 고위험군 또는 3기여서 지침상 항암요법이 권고되지만 대부분 고령으로 전신 컨디션이 저하되어 있다 보니 자칫 치료가 환자 몸에 부담이 될까 염려스럽다는 것이다. 보조항암화학요법은 이론상 완치 확률을 높이지만 신경독성 등 이상반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도 많다.

◇ 혈액 속 떠다니는 암 DNA로 대장암 재발 예측하는 검사법 등장


서울아산병원은 재발 위험을 가진 환자들을 구별하기 위해 혈액 속 '순환DNA(ctDNA)'를 확인할 수 있는 '가던트 리빌' 검사를 도입했다. 가던트 리빌은 조직 채취없이 혈액만으로 약 2주 만에 대장암 환자의 MRD를 발견할 수 있는 최신 검사법이다. 암세포가 사멸하면서 혈액 속으로 방출되는 암 DNA인 ctDNA를 확인하는 원리다. 김 교수는 “암은 잡초이기 때문에 풀만 제거하는 게 아니라 뿌리까지 제거해야 한다”며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남아있는 뿌리, 즉 미세잔존질환을 발견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액체생검”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면 암의 뿌리가 깊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보조항암화학요법을 받아야 하고 음성이 나오면 암의 뿌리가 약하거나 없으므로 수술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며 “액체생검이 임상적 근거가 더 쌓인다면 향후 조기 대장암 환자의 치료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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