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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포용과 관용의 극일 민족주의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尹정부, 통큰 양보로 한일관계 물꼬

정치권 ‘삼전도의 굴욕’ 비판하지만

대북 안보공조 등 韓에 이득 더 많아

때로는 지는 게 이기는 길 될 수도





윤석열 정부의 징용공 해결책은 대일 외교 협상의 결과라는 관점에서는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 양국 정부 모두 한일관계 복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고, 관계 복원을 위한 시간이 많지 않다는 인식도 공유하고 있었다. 올 여름을 넘기면 한국 정치는 총선 정국으로 돌입한다. 가뜩이나 정치 논리에 취약한 한일 관계가 복원을 위한 추동력을 확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3자 변제를 통한 배상이라는 골격에 대해서도 양국은 의견을 같이했다. 하지만 일본 전범 기업의 배상 참여와 일본 정부의 유감 표명 여부가 한일 합의를 가로막았다. 양국 사이 팽팽한 줄다리기가 있었지만 한국이 하나도 받아내지 못했으니 우리가 협상에서 졌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졌을까. 때로는 지고도 이기는 것이 인간사다.

우선 윤 정부의 해결책에 대한 국제 여론의 평가가 우호적이다. 통 큰 양보를 해 한일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튼 윤 정부의 결단을 칭찬하는 분위기다. 한국이 물꼬를 텄으니 이제 일본이 응답할 차례라고 한다. 일본이 호응하지 않으면 국제 여론의 질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몇 년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문재인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실제로 무력화하고 대법원 징용공 판결에 수수방관하고 있을 때 국제 여론은 관계 악화의 책임을 한국에 묻고 있었다.

무엇보다 관계 복원은 한국에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다. 일본 정부는 북한의 탄도미사일이 일본 열도를 넘어 낙하하니 안보 공조가 시급하다며 비로소 윤 정부에게 곁을 내주기 시작했다. 북의 핵미사일이 일본에 위중한 안보 위협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의 핵미사일은 한국에는 실존적 위협이다. 한일 안보 공조가 본격화되면 대북 억제는 또 다른 차원으로 진화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로 대표되는 수정주의 독재국가들은 규범과 규칙의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흔들어 대고 있다. 자유주의 국제 질서 수호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한국과 일본의 공통된 이익이지만, 한국에 더 절실하다. 한국이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국민 특유의 영민함과 성실함 때문이다. 이를 결집해 낼 수 있었던 국가 지도자들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유·인권·법치가 존중받고 개방된 시장 자본주의가 원활히 작동하는 국제 질서는 한국의 비약적 성장에 매우 우호적인 국제환경으로 작용했다. 일본에도 그랬지만 일본보다 작고 통상에 더 의존하는 한국에는 더 그랬다. 자유의 수호는 한국에게 가치 이전에 핵심 국익의 문제다.

일본의 전범 기업이 배상에 참여하고 일본 정부가 강제 동원에 유감을 표명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번 협상 과정에서 한국에 뭐 하나라도 더 받아내려고 문구 하나도 양보하지 않는 자잘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일본 특유의 외교 스타일이라고 해도 한때 미국을 넘보던 나라 치고는 다소 옹졸한 모습이다. 이제 그러려니 해야 한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을 살고 있지만 한국은 도약의 30년을 살고 있다.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세계 시장에서 TV 하면 소니, 자동차 하면 혼다였지만, 이제는 진열장에 삼성과 현대만 보인다. 구매력 기준 한국의 인당 소득은 일본을 뛰어넘었고, 첨단 산업의 쌀인 반도체는 일본이 넘볼 수 없는 경지다. 연초 ‘유에스뉴스 앤드 월드리포트(USNWR)’가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순위에서 한국은 6위, 일본은 8위를 차지했다. 한국의 문화 권력은 또 어떠한가. 누가 이제 일본 망가를 보고 엔카를 듣는가. K웹툰과 K팝이 세계적 추세다. 한국의 청년들이 일본의 청년에 비해 더 진취적이고 역동적이다. 이제 한국은 일본만큼, 아니 일본보다 더 잘사는 선진국이 됐다.

2020년대 한국의 국가 위상이 이리 높아졌는데, 일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여전히 1930년대 항일 민족주의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일본의 잘못이 크다. 일본이 그동안 50번 넘게 사과했다고 하지만, 한국의 집단 기억 속에는 폴란드의 국립묘지에서 무릎 꿇고 통렬히 반성했던 독일의 빌리 브란트 모멘트가 없다. 반일 감정을 악용하는 정치세력의 잘못도 크다. 이들은 ‘친일국방’이라는 해괴한 개념을 조작해내고 ‘삼전도의 굴욕’을 아무 때나 소환하며 여론을 오도하고 있다. 국익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만 있다. 우리 국민이 이들의 자극적 선동에 솔깃하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킨 북한의 김씨 일가도 포용하려 했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일본이지만 관용의 시각으로 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약해서가 아니라 강하기 때문이다. 좀 져주자. 그게 진정으로 이기는 길이다. 포용과 관용의 대일 민족주의가 진정한 극일의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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