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족이 불시에 뇌졸중으로 쓰러져도 골든타임 안에 치료 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 그게 저를 포함한 전 국민의 바램 아닌가요? 이대로는 또다른 동료를 잃지 않을 것이라 장담하기 힘듭니다. ”
배희준 대한뇌졸중학회 이사장(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은 27일 서울경제와 만나 “뇌졸중 환자가 24시간 365일 골든타임 이내에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을 확보하는 게 시급하다”며 “지금까지 나온 필수의료 지원대책은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응급의료에 대한 법률이 제정되고 27년이 지났지만 정부가 뇌졸중 환자가 제 때 치료받지 못한 채 사망하고 있는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개선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배 교수는 뇌신경 분야에서 SCI급 논문을 300여 편 발표한 세계적인 대가다. 2008년 정부 주도로 시행된 국내 다기관 뇌졸중 코호트 연구에 참여하며 국내 뇌졸중 역학조사와 질 향상에 기여했다. 그는 “응급의료제도 도입을 누구보다 환영했던 게 저였을 것”이라며 “30년 가까이 현장을 지키면서 심뇌혈관질환 등 필수 중증의료 영역의 급성기 대응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목소리를 냈지만 되려 악화되는 것 같아 힘이 빠진다”고 운을 뗐다.
국내 응급의료 기본체계가 갖춰지기 시작한 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공포됐던 1994년 무렵부터다. 당시 배 교수는 경기도에서 공중보건의 복무를 마치고 임상현장에 첫 발을 디딘 새내기 의사였다. 눈코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던 중 함께 복무했던 동료가 경막하출혈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했다. 사고 직후까지만 해도 의식이 있었다는데 수술 가능한 병원을 찾느라 처치가 늦어졌다는 말을 들으니 기가 찼다.
'뇌졸중 환자가 첫 병원에서 치료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일념을 가지고 뇌졸중 안전망 구축에 평생을 쏟았는데 지난해 서울아산병원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간호사를 급히 다른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허탈했다.
배 교수에 따르면 매년 10만 명이 넘는 뇌졸중 환자가 발생하지만 여전히 20%는 처음 이송된 병원에서 급성기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다른 병원으로 전원된다. 지역에 따라서는 이같은 환자 비율이 45%까지 올라가는 게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배 교수는 “설상가상 뇌경색 치료를 담당할 의사 수가 부족해지면서 이런 체계가 일시에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며 “개별 병원이 감당할 수 없다면 집중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급성기 치료부터 집중치료실 치료, 시술, 수술, 중환자 치료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준의 전문 치료가 가능한 포괄적 뇌졸중센터(CSC·Comprehensive Stroke Center)가 운영될 수 있도록 권한을 몰아주자는 것이다.
뇌졸중학회는 미국 시스템을 참고해 2012년부터 뇌졸중센터 인증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인증을 받은 전국 84개 센터 중 72곳은 급성 뇌경색 환자에게 혈전용해제를 사용하거나 뇌혈관에 기국를 삽입해 혈전을 제거하는 재관류치료가 가능하다. 전국 14개 권역심뇌혈관센터가 CSC 역할을 맡는다면 한결 효율적 시스템이 갖춰질 것이라 보고 유관학회와 CSC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중지를 모으고 있다. 그는 “안타까운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전국 어디서나 비슷한 수준의 급성기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정부도 의지가 있다면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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