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 사는 서경자(48·여)씨는 보름에 한번 꼴로 부산을 찾는다. 원인 모를 빈혈 증상으로 2010년경 병원을 찾았다가 골수형성이상증후군(MDS·Myelodysplastic Syndrome)으로 평생 수혈을 받아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들었다. MDS는 골수에서 혈액을 만드는 골수의 조혈모세포에 이상이 생겨 건강한 혈액세포를 충분히 만들지 못하는 악성 혈액질환이다.
2019년 신규 환자가 1371명에 불과할 정도로 희귀한 병인데 3명 중 1명은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진행되어 예후가 나쁘다. 감염·출혈 등 합병증에 의한 사망 위험도 높다. 서씨의 집에서 울산역까지는 버스로 30분 남짓 거리다. KTX를 타고 부산역에 도착해 부산대병원으로 이동하면 아무리 서둘러도 꼬박 1시간 30분이 걸린다. 왕복 3시간을 길에서 허비하는 셈이다. 병원에서 수혈을 받는 과정도 녹록지 않다. 항상 붐비는 대학병원에서 혈액검사, 외래진료를 받고 수혈을 받으면 3~4시간이 훌쩍 지났다. 서씨는 “생리 기간이 겹치면 급격히 피가 부족해져 5일에 한번 수혈을 받기도 한다”며 “10년 넘게 수혈을 받으러 먼 거리를 오가는 생활이 계속되니 부담이 너무 크다”고 토로했다.
건강한 골수는 백혈구·적혈구·혈소판 등 세 가지 종류의 혈액세포를 생성한다. 우리 몸에서 필요로 하는 산소 운반을 담당하는 적혈구 역시 골수 내의 조혈모세포가 성숙하는 과정에서 초기 적혈구 전구세포의 분화, 팽창 등의 과정을 거쳐 성숙한 세포로 만들어진다. MDS 는 이 과정에 결함이 생긴 경우로 홍반전구 전구체의 분화와 세포사멸이 가속화되면서 적혈구 생성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적혈구 생성 초기의 증식 단계가 과활성화 되더라도 과도한 세포사멸이 일어나고 성숙한 적혈구가 만들어지지 못해 적혈구 수를 회복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의학적으로는 이를 '무효조혈(ineffective erythropoiesis)'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병의 특성 때문에 MSD 환자의 약 89%는 빈혈 증상을 호소한다. 병의 진행 속도는 환자마다 매우 다르다. 학계에서는 혈구 감소증의 정도, 골수 아세포 및 염색체 검사 결과 등을 점수화한 국제 예후 점수 평가법(IPSS)을 기준으로 질환의 위험도를 나누는데 77%가 저위험군이다. 1차치료로는 적혈구형성자극제가 쓰이는데 효과를 보이는 환자는 30~60%에 불과하다. 초기 반응이 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불응성이 되기도 해 대부분 수혈에 의존한다.
신호진 부산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성숙한 적혈구 생성 과정에 결함이 생기면 삶의 질이 떨어질 뿐 아니라 생존기간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며 “수혈 의존 환자는 비수혈 의존 환자보다 사망 위험이 2배 가량 높다는 보고도 있어 수혈 의존성을 해결하는 중요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MDS 빈혈 환자들은 최소 한달에 한번 가량 의료기관을 방문해 수혈을 받아야 한다. 실제 신 교수가 진료하는 환자들 중에는 경상남도나 거제도, 창원 등지는 물론 경상북도 영덕에서 주기적으로 수혈을 받으러 오는 환자도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잦은 수혈에 의한 합병증이다. 적혈구 수혈팩 1개에는 대략 200~250㎎의 철분이 들어있다. 장기간 반복해서 수혈을 받다보면 간, 심장 등의 장기에 철이 과도하게 쌓이면서 철 과잉증이 발생해 심부전·부정맥 또는 간부전으로 이어진다. 이를 막기 위해 철 킬레이션제 치료를 병행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복통, 구토, 설사 등 위장관계 증상이나 신장기능 이상, 간기능 이상 및 피부 발진 등 여러 이상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MDS 환자의 63.5%가 60세 이상으로 고령층 비중이 높다 보니 합병증 위험은 더욱 크다.
최근에는 세계 최초로 적혈구 성숙을 유도하는 기전의 신약이 등장했다. 글로벌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이 개발한 '레블로질(성분명 루스파터셉트)'은 전환성장인자-베타(TGF-β) 상과(superfamily) 리간드에 결합해 적혈구 성숙을 억제하는 스매드(Smad) 2/3 경로의 과활성화를 감소시켜 적혈구 성숙을 유도한다. 229명의 환자가 참여한 글로벌 3상 임상연구에 따르면 3주 간격으로 레블로질을 투여 받은 환자의 38%가 첫 24주 시점에 8주 이상 무수혈을 달성하며 위약군과 3배 이상 차이를 보였다. 매월, 혹은 2주에 한번 수혈을 받았던 환자 3명 중 1명은 신약을 투여하면서 4개월에 1번만 수혈을 받아도 된다는 의미다. 신 교수는 “수혈 의존성을 3분의 1 가량 줄일 수 있는 적혈구성숙제제가 도입되면 MDS 환자들의 적혈구 수혈 횟수와 그로 인한 치료 부담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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