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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철 연세대 교수 "현장의사 배출 10년 걸려 의대 정원 확대 시급하다"

수급 불균형은 공급 부족과는 별개 문제

고령화 대비한 의료 수요 대비 위해 필요

의사 공급 늘리되 의대 신설은 답이 아냐

5년마다 수급 파악, 재조정이 현실적 대안

필수의료 대응은 공급만으론 해결 어려워

박은철 연세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가 단계별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의대 정원을 늘려서 기피 진료과, 지방병원 의료공백을 해결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의사 수급 불균형은 공급과 별개로 풀어야 할 문제지요. 고령화와 더불어 급증하고 있는 의료 수요에 대비하려면 의대 정원 확대가 시급합니다.”

박은철(사진) 연세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3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2040년까지 공급대비 의사 수요는 계속 증가할 것”이라며 “지금 의대 정원을 늘려도 현장에서 일할 의사가 배출되려면 10년 이상 걸린다. 더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한국보건행정학회 회장, 연세대학교 의과학연구처장,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조사연구실장 등을 지내며 보건의료 정책에 정통한 인물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보건바이오의료정책분과 위원장을 맡으며 보건의료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안정세로 접어들고 수도권 대형병원조차 의사가 없어 소아 응급실 문을 닫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며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의대 정원 확대 논쟁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정부는 필수의료와 공공보건의료 분야 의사인력 부족 문제의 해법을 의대 정원 확대에서 찾고 있다. 2006년 이래 18년째 3058명으로 묶여있는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사진 설명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올 초 “빠른 시일 내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뒤 의정협의체가 2년 여만에 재개되며 관련 논의는 급물살을 타는 듯 했다. 내년도 입시 일정에 반영되려면 4월 말까지는 의대 정원 조정안이 확정돼야 한다는 구체적 타임라인도 거론된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는 “의사 증원으로는 근본 원인을 해결할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심지어는 의사 수가 많은지, 적은지를 두고도 찬반 의견이 팽팽하다.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는 2.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3.7명)의 3분의 2 수준이다. 한의사를 제외하면 OECD 절반인 1.9명까지 떨어진다. 보건사회연구원은 현 추세를 지속할 경우 2035년에 수요 대비 부족한 의사 수가 2만 7000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의사단체는 이런 통계를 보고도 의사 1인당 업무량 추계 등을 문제삼으며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고 반박한다.

과연 진실은 뭘까. 박 교수는 “동유럽 국가 비중이 높은 OECD 38개국과 평균 의사수를 비교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의료계 주장도 일리가 있다”며 “인구 1000명당 의사가 2.6명인 일본·미국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지는 않다”고 답했다. 의대에서 배출되는 인력도 비슷하다. 한국의 인구 10만 명당 의대 졸업자는 7.2명으로 OECD 평균(13.2명)의 절반 수준이다. 다만 미국(8.2명)·일본(6.9명)과 비교할 경우 부족하다고 보기 어렵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전 세계 유례없이 빠른 고령화를 겪고 있다는 점이다. 박 교수는 “인구 감소세와 의사 생산성을 따져봐도 노인 인구가 증가하면서 의료서비스 수요가 높아질 것은 자명하다”며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서가 아니라 큰 불로 번지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의대 정원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또다른 근거로는 임금 수준을 꼽았다. 국내 봉직의(페이 닥터)들의 월 소득은 근로자 평균의 4.6배로 OECD 평균(2.9배)을 훌쩍 뛰어넘는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는 의사들의 생산성이 높은 편이다. 근로시간당 소득으로 환산하면 낮아질지 모르나 총량 기준으로는 고소득에 해당한다”며 “인구당 의사가 증가하면 의사 수입이 줄어드는 한편 경상의료비 역시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지표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책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의사 공급을 늘리되 의대 신설은 답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40~50명 규모의 신생 의대를 늘린다고 가정해 보면 답이 나온다. 의사 증가 효과는 1.3~1.6%에 그쳐 미미한데 기초의학 등 교육의 질이 저하될 것이란 이유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6배 많은 미국은 의대가 150개다. 한국은 현재 의대가 40개여서 인구 대비 적지 않은데 그 중 17개가 입학 정원이 50명 이내”라며 “전체 입학 정원 3058명에서 의대를 신설해 50명을 더 늘린들 ‘언발에 오줌누기’나 다름 없지 않겠느냐”고 꼬집었다. 그보다는 의약분업 당시 의정합의로 줄였던 의대 입학정원 351명을 원상복구시키는 게 효율적이란 생각이다.

그는 “2004년부터 4년에 걸쳐 학부와 의학전문대학원, 편입학 정원 등을 합쳐 전체 입학정원의 10% 만큼을 감축했다”며 “대학별 입학정원 등을 고려해 5~20%씩 증원하면 기존 의대의 교육능력을 활용하면서도 의사 공급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한번 늘리고 끝내자는 게 아니라 5년마다 의사 수급을 추계해 정원을 재조정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필수의료 공백은 의사 인력을 늘리는 것만으로 해결되기 어렵다”며 “의대 정원을 늘리면서 진료비 지불제도 전반을 손보려는 노력이 병행돼야만 의사 수급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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