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은 대부분 마찬가지겠지만 경북 역시 정보화 근육이 너무 허약합니다. 이러다 자칫 지능화 혁명의 쓰나미에 휘말리겠다는 위기감이 있었죠. 다만 위기는 언제나 기회로 연결되는 법이죠. 산업화에 늦은 한국이 일본을 정보화로 앞설 수 있었고 정보화에 늦은 중국이 모바일 혁명에서 한국을 추월했던 것처럼 경북도 잘 준비한다면 수도권보다 더 빨리 지능화 혁명에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구·경북연구원에서 올해 간판을 새로 달고 출범한 경북연구원의 초대 수장인 유철균 원장은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북연구원은 지난달 7일 국내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최초로 챗GPT 모델을 활용한 인공지능(AI) 정책 지원 서비스 ‘챗GDI’를 공개했다. 미국 ‘오픈AI’가 GPT 시리즈의 앱프로그래밍인터페이스(API)를 공개한 날이 지난달 2일이었으니 경북연구원은 웬만한 민간기업보다도 대응이 빨랐던 셈이다. 배경에는 지능화 혁명을 선점하기 위한 유 원장의 속도전이 있었다.
그는 “원래 네이버의 초거대 AI인 ‘하이퍼클로바’를 활용한 지자체 행정 지원 프로그램 ‘헬퍼(Helper)’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지난해 11월 공개된 챗GPT를 보니 훨씬 진보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방향을 틀었다”고 부연했다.
유 원장은 지방행정과 AI라는 얼핏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조합에서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 현재 AI 챗봇이 활약하는 주요 영역이라고 하면 소매·금융·의료인데 지방행정이 틈새시장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는 설명이다.
“지방행정은 각 나라의 법체계를 따라가야 하므로 지식 베이스가 법과 매칭되는 것이 기본입니다. ‘헌법-법-시행령-시행규칙’ 등으로 이어지는 법체계에 따라 적용되는 행정의 일부를 AI로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체계를 각 나라의 법 시스템에 맞춰 조금만 개량한다면 전 세계 지방정부에 서비스를 수출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유 원장은 특히 지방공무원들이 민원 고객을 상대하는 대민 행정을 힘들어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유 원장은 “대부분의 민원인들은 잔뜩 화가 난 채로 공공기관을 찾기에 화를 풀어주기 위한 공무원들의 감정 노동이 엄청나다”며 “이런 감정 노동을 AI가 대체하는 서비스가 나온다면 다른 지자체에서도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북이 지능화 혁명에 앞장선다면 지역 일자리 확대에도 이로울 것이라는 게 유 원장의 판단이다. 그는 “지능화 혁명이 직업을 많이 없애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직업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AI 강화 학습을 돕는 업무가 대표적”이라며 “이런 일들은 높은 난도의 노동이 아니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기에 지역이 가져올 수 있는 좋은 소득”이라고 설명했다.
밀리언셀러 ‘영원한 제국’의 소설가 ‘이인화’로 더 유명한 유 원장은 지난해 8월부터 3년 임기의 경북연구원 원장 직무를 시작했다. 이화여대에서 교직 생활을 오래 했지만 본업이 소설가인 문학 전공자가 지역 싱크탱크의 수장이 된다고 하자 반발도 있었다. 시민단체들의 반발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유 원장은 “그런 반대가 오히려 일을 도전적으로 해나갈 원동력이 된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익숙지 않은 일이라 배워갈 부분들이 많지만 고향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점이 즐겁고 만족스럽다”는 말도 덧붙였다.
AI와 메타버스 등의 기술 발전으로 지역에 새로운 희망이 싹트고 있다는 점은 유 원장을 즐겁게 한다.
“석·박사 50여 명이 모여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해법은 이미 인터넷에 다 있습니다. 과거 ‘싱크탱크’적 문제 해결 방식에서 벗어나 ‘트랜스내셔널(초국가)’적 협업을 해야 하는 단계인 거죠. 가령 네덜란드에 살고 있는 러시아 연구원과 카카오톡으로 협업하는 일들은 이미 비일비재합니다. 열의 있고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전 세계 연구원을 가성비 있게 쓸 수 있는 시대가 된 만큼 더욱 의미 있는 활동들을 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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