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에너지기구(IEA)가 올해 발표한 에너지기술전망(ETP·Energy Technology Perspectives)이 탄소 중립을 달성하려는 세계 각국의 관심을 끌고 있다. ETP는 에너지 기술 발전의 흐름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지속 가능한 에너지 발전을 위한 전략과 대안을 제시하는 보고서다. 올해 보고서가 흥미로운 것은 내용의 대부분을 에너지 공급망에 할애해 주요 원료의 공급 현황과 분석을 기술했기 때문이다.
탄소 중립을 위해 동원되는 기술들은 대부분 새로운 원료 혹은 다량의 재료를 필요로 해왔다. 그런 만큼 그간의 보고서는 이상적인 목표만 제시하는 선언적 의미를 지녀 허황되다는 비판을 받아온 것과 달리 이번 보고서는 실질적인 문제에 접근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기화에 큰 역할을 하는 배터리 원료의 경우 리튬·니켈·구리·코발트 등은 필요량에 비해 전 세계 광물 최대 채굴 계획량이 부족하다. 리튬의 경우 40% 정도가 부족하니 목표와 현실과의 격차를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많은 원료들이 편중돼 있다는 점이다. 희토류는 중국, 다른 금속재는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에 각각 편재돼 있다.
탄소 중립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신재생에너지도 편중돼 있다. 태양광의 경우 적도 근방에서의 태양광발전 밀도는 우리나라와 같은 중위도 국가보다 4배까지 높고, 같은 재료로 발전을 해도 비용이 독일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해 편중 정도가 심각하다. 바람의 경우 지극히 일부 지역에 강한 풍력 자원이 있고 그나마 풍력발전을 위해 필요한 금속과 생산 용량도 많이 부족한 편이다.
태양광 자원이 많은 곳과 전력 수요가 많은 곳이 멀리 떨어져 있거나 바다를 건너야 해 신재생에너지 자원의 분배도 큰 숙제다. 따라서 값싼 신재생에너지 전기로부터 물 분해를 통해 수소를 만들어 수요 지역에 공급하는 것이 중요하고 나아가 에너지 밀도가 낮고 다루기 어려운 수소 대신 액체 합성 연료로 에너지를 이송하는 것이 유용하다.
안정된 원료 수급망이 탄소 중립 에너지 기술의 관건이고 국제무역을 통한 원료와 에너지의 분배가 중요하다는 올해 IEA의 보고서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 기술과 자동차 제작 기술을 가진 우리나라는 배터리 재료 자원이 거의 없고 태양광·풍력과 같은 신재생에너지도 약한 편이다. 결국 원료와 에너지를 대부분 수입해야 하는데 해외의 신재생에너지와 원료 수급을 위한 생산과 보급 기지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내부에서도 탄소 중립을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되 완전한 탄소 중립으로 가는 경로상에는 국내의 고농도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거나 직접 공기 중 이산화탄소 포집을 통해 탄소 자원을 모으고, 해외의 신재생에너지원을 개발해 수소와 합성한 암모니아·메탄올과 같은 고밀도 액체 에너지이송체로 에너지를 들여오는 노력도 함께해야 한다. 일본과 독일은 이미 국제 에너지 공급망을 통한 탄소 중립 행동을 시작했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정부와 업계가 탄소 중립에 더욱 힘쓰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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