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정부가 11일(현지 시간) 불법 이주민의 대규모 유입에 대응해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최근 아프리카 내 실향민에 대한 반인도적 범죄가 급증한 결과 죽음을 무릅쓰고 유럽행을 택하는 이주민들이 폭발적으로 늘며 유럽연합(EU)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날 내각회의에서 넬로 무수메치 시민보호 및 해양부 장관의 제안을 받아들여 6개월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비상사태 기간동안 초기 자금 500만 유로(약 72억 원)를 투입하고 이민자 입국 및 본국 송환 시설에 대한 관리를 강화할 계획이다. 로이터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조르자 멜로니 정부는 자국에 체류할 수 없는 사람들을 보다 신속하게 송환하기 위해 신원 확인 및 추방 명령을 강화할 것”으로 관측했다.
지난해 10월 집권한 극우 성향의 멜로니 내각은 강경한 이주민 정책을 약속했지만 올해 들어 이탈리아 해안에 상륙한 이주민 수는 약 3만 1300명으로 전년 동기(7900명) 대비 3배가 넘는다. 특히 최근 사흘간 3000명이 넘는 이주민이 밀려들며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이탈리아 최남단에 위치해 중동·아프리카 이주민의 '첫 유럽 관문’으로 꼽히는 람페두사섬의 경우 9일 하루 만에 1000여명이 상륙했다.
이례적인 이주민 유입 사태의 배경으로는 △아프리카 식량위기발 난민 증가 △튀니지·리비아 등 이주민 체류국가의 외부인 혐오·탄압 증가 △지중해 횡단에 적합한 기상 조건 형성 등의 요인이 꼽힌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코로나19·지역 분쟁 장기화·우크라이나 전쟁·40년래 최장기 가뭄 등이 합쳐지며 최근 '아프리카의 뿔'이라 불리는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식량 난민’,‘기후 난민’ 등이 속출했다고 진단했다. 이런 가운데 리비아와 튀니지가 연달아 자국으로 유입된 실향민들을 배척하며 풍선효과로 유럽행 난민이 급증했다. 최북단에 위치한 두 국가는 통상 자국에서 도망친 실향민들의 체류지이자 유럽행 출발지로 통한다. 하지만 최근 리비아가 이민자 단속을 강화한 데 이어 카이스 사이에드 튀니지 대통령이 이민자들에 대한 인종차별적 음모론을 제기하며 이들의 신변이 위험해졌다. 결국 두 국가에 퍼진 적대적 분위기를 피해 불법 이민선을 타고 유럽행을 감행하는 이주민이 급등했다. 아울러 올해 초 기온이 예년보다 높고 바람도 잔잔해 비교적 지중해를 건너기 이상적인 기상 조건이 조성된 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들어 이민선 침몰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앞서 2월에는 이탈리아 서남부 칼라브리아주 동쪽 해안에서 이민 선박 난파 사고로 70여 명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졌으며 지난달에도 마다가스카르, 리비아, 튀니지 해안 등에서 이탈리아로 향하던 이민선이 침몰해 20~30여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줄줄이 발생했다.
이탈리아는 유럽연합(EU) 차원의 공동 대응을 꾸준히 촉구하고 있다. 이날도 무수메치 장관은 "유럽연합(EU)의 책임감 있는 개입 없이는 이주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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