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달리 요즘 미국에서는 공장 건설 열풍이 뜨겁다. 도심과 농촌·사막지대·해안가 등 지역을 막론하고 곳곳에서 새로운 공장이 지어지고 있다. 지난해 제조업 관련 건설 지출만 사상 최대인 1080억 달러(약 142조 원)를 기록했을 정도다. 전기차 배터리와 첨단 반도체는 물론 안경과 자전거·건강보조제 등 전통 제조 업체들도 속속 미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각종 보조금과 세액공제를 내세워 제조업 붐에 불을 붙였다. 미국의 반도체지원법은 생산 보조금(390억 달러)과 연구개발(R&D) 지원금(132억 달러) 등을 합해 5년간에 걸쳐 527억 달러를 투입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제조업이야말로 처음부터 미국 역사의 일부였다”면서 “지금 미국은 조금 더 전통적인 방식으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경제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무엇보다 성장을 이끌어왔던 수출 날개가 꺾였다. 세계경제의 침체 탓이 크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제조업의 경쟁력 저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2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68.4%에 머물렀고 재고율도 120.1%로 뛰어올랐다. 산업연구원 조사에서는 제조업 경영의 부정적 요인으로 ‘생산비 부담 가중(63%)’과 ‘재고 누증(41%)’ ‘자금난(35%)’ 등이 꼽혔다. 제조업 위기는 구조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업종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석유화학·철강 등 어느 한 곳도 성한 데가 없을 정도다.
과거 위기 때마다 한국 경제의 회복을 이끈 것은 제조업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벗어날 때 정보기술(IT)을 앞세운 벤처기업의 파워가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2008년 리먼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무엇보다 제조업이 튼튼하게 뿌리내려야 경제를 지탱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우리 기업들은 당시 공격적 경영으로 투자를 늘리면서 위기를 정면으로 헤쳐나갔다. 모두가 몸을 사릴 때 기업들이 앞장서 글로벌 경쟁사와의 격차를 벌려놓았다. 그만큼 한국 기업들은 역동적으로 뛰었고 왕성한 기업가정신으로 뭉쳐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땅한 ‘구원투수’가 보이지 않는다.
흔히 제조업의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일 뿐이다. 최근 고용 통계에서 보듯이 제조업만큼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내는 분야가 없을 뿐더러 제조업 기반이 탄탄해야 다양한 산업 성장도 가능하다. 우리의 제조업 포트폴리오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강점이다. 세계 각국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첨단 제조업 기반을 갖추기 위해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우리도 과감한 규제 혁파와 파격적 지원 등을 통해 제조업의 부흥을 이끌어내야 한다. 기업의 발목을 잡는 왜곡된 경영 환경부터 바로잡아 제조업에 핵심 인재들이 몰리도록 만들어 신성장의 물꼬를 터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도 일관된 정책을 펼쳐 기업 활력을 북돋워야 한다. 그래야 제조업이 경기 회복의 돌파구로 나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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