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동화 같은 우승을 만들어낸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레스터 시티의 이번 시즌은 잔혹 동화로 끝날지도 모른다.
2015~2016시즌 레스터는 기적의 팀으로 불렸다. 1884년 창단 이후 절반 이상의 시기를 하부 리그에서 보낸 레스터가 창단 132년 만에 첫 우승이라는 역사를 썼기 때문이다. 불과 한 시즌 전에 EPL로 승격한 팀이었기에 시즌 전까지 그들의 우승을 예상하는 이는 없었다. 영국 베팅 업체가 책정한 레스터의 우승 확률도 5000분의 1이었다.
워낙 말도 안 되는 우승이었기에 전 세계 축구 팬들은 레스터의 우승을 ‘동화’라고 표현했다. 동화를 쓴 클라우디오 라니에리(이탈리아) 감독은 한순간에 명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공격수 제이미 바디(잉글랜드)는 인간 승리의 아이콘이 됐다. 2009년까지만 해도 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8부 리그에서 축구를 시작한 그는 레스터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잉글랜드 대표팀의 부름을 받았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도 출전한 그의 몸값은 한때 2000만 파운드(약 331억 원)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레스터의 우승은 한여름 밤의 꿈에 불과했다. 이듬해 극심한 부진과 함께 한때 순위가 17위까지 추락하자 클럽의 역사를 만든 라니에리 감독과 결별했다. 2020년과 2021년 2년 연속 5위에 올라 유럽 대항전에 진출하기도 했지만 응골로 캉테, 리야드 마레즈, 해리 매과이어 등 우승 주역들도 하나둘씩 팀을 떠난 가운데 과거 끈끈했던 조직력은 리빌딩 과정에서 서서히 모래알로 변했다.
우승 멤버 중 현재 남아 있는 선수는 바디가 유일하다. 하지만 올해로 서른 여섯인 그는 올 시즌 리그 29경기에서 1골밖에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바디의 부진과 함께 야니크 베스테르고르와 라이언 버트런드, 유리 틸레만스 등 핵심 선수들의 장기 부상은 팀의 붕괴를 더욱 가속화했다. 2021년 레스터의 첫 FA(축구협회)컵 우승을 이끈 브렌던 로저스 감독도 전술적인 문제로 인해 선수들과 마찰을 빚었다.
그 결과 기적의 챔피언 레스터의 이야기는 7년 만에 잔혹 동화로 향하고 있다. 레스터는 이달 8일(이하 한국 시간) 영국 레스터의 킹파워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2023시즌 EPL 30라운드 홈 경기에서 본머스에 0 대 1로 패했다. 이달 초 로저스 감독을 경질하는 강수를 뒀지만 애스턴 빌라(1 대 2 패)와 본머스에 연달아 패하며 반등에 실패했다.
최근 3연패 포함 리그 8경기(1무 7패) 연속으로 승리를 챙기지 못한 레스터는 강등권인 19위(승점 25·7승 4무 19패)에 머물렀다. 최하위 사우샘프턴(승점 23·6승 5무 19패)과는 2점 차다. 남은 8경기에서 순위를 끌어올리지 못한다면 2014년 EPL로 승격한 후 9년 만에 2부 리그인 챔피언십으로 돌아가게 된다.
로저스 감독 경질 후 한동안 사령탑을 찾지 못했던 레스터는 11일 딘 스미스 감독을 소방수로 급히 투입했다. 레스터의 우승 당시 라니에리 감독의 수석 코치를 담당했고 8개월간 팀을 지휘하기도 했던 크레이그 셰익스피어가 스미스 감독을 보좌한다. 첼시 레전드 존 테리도 코치진에 합류했다. 스미스 감독은 “EPL 잔류를 위해 경험 많은 코치진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과연 이들이 잔혹 동화로 향하는 레스터의 결말을 바꿀 수 있을지 지켜볼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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