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경상북도 군위군에 위치한 사립 수목원 ‘사유원’에 모과나무마다 분홍빛 꽃잎이 한창이다. 언덕 위 벤치에 앉으면 모과나무 100여 그루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수목원을 거닐다 다리가 아프면 곳곳에 세워진 건축물에 들어가 햇빛도 피할 겸 쉬어갈 수 있다. 팔공산을 바라보는 전망대부터 화장실까지 모두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가 지었다. 하루 입장객을 200여 명으로 제한하고 평일 입장료 5만 원, 주말 6만 9000원 등 고가 정책을 유지하는 ‘콧대 높은’ 수목원인 이유다.
기업·개인이 운영하는 수목원들이 국내 관광의 신흥 킬러 콘텐츠로 떠오르고 있다. 국립 수목원(입장료 1000원)에 비해 통상 10배, 많게는 60배 이상 비싸지만 국립 수목원과 다른 매력을 내세우며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사유원이다. 유재성 태창철강 회장이 조성해 2021년 9월 개원한 민간 수목원이다. 시작은 일본에 밀반출되는 모과나무를 사들이는 것부터였다. 이후 유 회장이 수집한 나무가 걷잡을 수 없이 많아지면서 부지를 선정해 10만 평 규모의 수목원을 조성했다. 사유원은 300년 된 살구나무, 200년 된 백일홍나무 등 오래된 나무들과 함께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모두 승효상, 최욱, 알바로 시자 등의 건축가가 지었다. 좁은 통로를 지나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으며 삶과 죽음을 생각해볼 수 있도록 설계된 ‘명정’, 작은 창을 통해 보현산에서 뜨는 해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내심낙원’ 등이 있다. 대구에서 차로 한 시간가량 더 들어가야 하는 군위에 고가의 입장료를 내고도 사람들이 찾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유원 측은 “전체 입장객의 60%는 수도권 여성이며 시자의 건축물 때문에 일본·유럽 등에서도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다”며 “국립 수목원 등에 비춰보면 150만 명이 입장한 것과 같은 규모의 입장객들이 이제까지 사유원을 찾아왔다”고 설명했다.
사유원 외에 ‘화담숲’ 역시 민간 수목원으로 봄·여름·가을 내내 인기가 많은 수목원으로 손꼽힌다. 평소 새와 숲에 관심이 많았던 LG그룹의 구본무 전 회장이 만들었다. 구 전 회장은 평소 경영 구상이나 생각을 다듬기 위해 화담숲을 자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1만 1000원, 정원사와 동행하는 프로그램은 4만 원이다.
화담숲의 매력은 다양한 식물을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다. 화담숲 초입에 위치한 이끼원은 솔이끼·서리이끼·비꼬리이끼 등 30여 종의 이끼류가 사는 곳으로 국내 최대 규모다. 이달 말까지 진행되는 수선화 축제 역시 다른 지역의 축제와 달리 다양한 종류의 수선화를 관람할 수 있게 조성됐다. 특히 2000여 그루의 자작나무 밑에 이룬 노란 수선화 군락은 봄에 화담숲을 찾는 이유 중 하나로 손꼽힌다. 화담숲을 찾은 방문객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 장소이기도 하다. 화담숲 측은 “각시붓꽃·야광나무 등 지금 꽃이 피나 개화 시기가 짧아 보기 힘든 꽃들을 화담숲 곳곳에서 볼 수 있다”며 “벚꽃·단풍 명소로 유명해졌지만 다양한 식물을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 외에도 경기도 가평의 아침고요수목원도 ‘봄꽃 맛집’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아침고요수목원은 21일부터 5월 28일까지 봄꽃페스타도 개최한다. 200여 종의 봄꽃과 100여 종의 목본성 식물을 통해 다양한 봄꽃을 소개한다. 300m 길이로 조성된 튤립길에서 다양한 색과 모양을 가진 6만 본 이상의 튤립을 구경할 수 있다. 이 수목원 역시 한상경 삼육대 원예학과 교수가 세계 각국의 정원과 식물원을 방문한 뒤 한국 정원의 필요성을 느껴 조성했다.
경상남도의 진해보타닉뮤지엄은 진해 바다가 보이는 곳에 위치해 바닷바람을 맞으며 즐길 수 있는 사립 수목원이다. 야생화 2000종, 관목 300종 등의 식물이 심겨 있다. 각 계절에 맞춰 개화하는 종으로 구성해 계절마다 다른 꽃을 볼 수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수목원마다 콘셉트가 다르고 같은 종의 식물이더라도 크기 등이 달라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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