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만 해도 뇌졸중은 제법 인기있는 파트였습니다. 저 역시 나름 치열한 경쟁을 뚫고 뇌졸중 전임의가 됐고요. 하지만 다시 돌아가도 뇌졸중을 선택할 거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
김태정 대한뇌졸중학회 홍보이사(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19일 웨스틴조선호텔 서울에서 열린 ‘응급의료 기본계획 및 필수의료 지원 대책 현황과 발전방안 모색’ 기자간담회에서 "뇌졸중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걸 알면서도 지금 같은 상황에선 후배들에게 뇌졸중 전문의를 지원하라고 권하기 어렵다"고 담담히 말했다.
학회에 따르면 올해 신경과 전문의 시험에 합격한 83명 중 5명만 뇌졸중 전임의로 지원했다. 2023년 현재 전국 84개 뇌졸중센터에 근무하는 신경과 전임의는 14명에 불과하다. 2018년(29명)과 비교하면 5년새 반토막 났다. 뇌졸중을 비롯해 중증 응급질환 치료를 담당해야 할 권역심뇌혈관센터 14곳 중 전임의가 근무하는 곳은 분당서울대병원 한 곳 뿐이다. 전공의가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교수가 당직을 서는 대학병원과 수련병원은 증가하고 있다.
학회는 젊은 의사들이 '뇌졸중 전문의'를 기피하는 근본 원인을 '저수가'에서 찾는다. 종합병원급 뇌졸중 집중치료실의 입원료는 13만3320원으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실료 6인실 일반과의 17만 1360원 보다도 낮다. 현재 뇌경색 급성기 필수치료인 정맥내 혈전용해술 관리료는 약 19만 원으로, 해외 국가에서 동일 시술을 받았을 때 발생하는 비용(약 50만 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뇌졸중 전임의에 대한 처우가 좋을리 없다. 뇌졸중 의심 환자가 발생했을 때마다 울리는 전화를 밤새워 받으며 '온콜'(호출당직)을 서도 대부분의 병원에선 당직비 자체가 지급되지 않는 게 뇌졸중 전임의의 현실이다. 24시간 뇌졸중집중치료실 전담의 근무수당은 2만 7730원, 시간당으로 계산하면 최저시급은 커녕 1000원에도 못 미친다.
차재관 대한뇌졸중학회 질향상위원장(동아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제가 58세인데 4살 어린 후배 교수와 둘이서 퐁당퐁당 당직을 선다. 어제도 당직을 서고 왔는데 전공의에게 걸려온 전화 10건 중 뇌졸중 의심 환자가 5명이었고, 그 중 1명에게 정맥 내 혈전용해제(tPA)를 투여했다"며 "19만 원이 문제가 아니다. 최소한 수고에 상응하는 보상이 따라야 보람을 느낄텐데 환자 1명을 살렸다는 사명감만으로 버티길 강요하는 건 너무 가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형적인 진료수가가 필수 중증 환자에 대한 전문인력 부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경복 대한뇌졸중학회 정책이사(순천향대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지금 추세라면 5-10년 뒤에는 연간 10만 명의 뇌졸중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뇌졸중 전문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질 것”이라며 "뇌졸중에 대한 수가 개선 및 신설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뇌졸중 집중치료실 수가를 간호간병통합 병실료보다 최소 1.5배 이상 상향 조정하고, 외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tPA 수가 개선과 뇌졸중 진료 수가 및 관찰료, 당직비 등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배희준 대한뇌졸중학회 이사장(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은 "뇌졸중으로 평생 후유장애를 갖고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뇌경색은 발생하더라도 치료만 잘하면 장애 없이 생활 할 수 있는 질병"이라며 "뇌졸중 치료의 목표가 생명연장 뿐 아니라 후유장애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