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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다시보기]르누아르의 양면성

신상철 고려대 문화유산융합학부 교수

르누아르 ‘우산’.




1862년 파리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한 이후 본격적인 화가의 길에 접어든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평생 6000여 점의 작품을 제작했다. 그의 그림은 대부분 도시적 주제를 밝은 색채로 묘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부르주아적이고 파리 중심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밝은 색채와 섬세한 기법으로 유쾌하고 무사태평한 세계를 구현하는 르누아르의 그림들은 근대사회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부르주아 계층의 취향에 매우 적합한 예술이었다. 중산층 가정의 안정된 생활 모습을 르누아르 특유의 느슨하면서도 우아한 방식으로 표현한 작품들은 그에게 상업적 성공을 가져다줬고 인상주의가 대중적 인기를 얻는 데 공헌했다.

그러나 1880년대 중반에 이르러 르누아르는 인상주의에 확고한 방법론이 부재하다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점차 드로잉에 중점을 둔 전통적인 화풍으로 작업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1886년에 완성된 ‘우산’은 그의 양식적인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화면 우측에 위치한 인물들의 형상은 인상주의의 전형적 특징인 밝은 색채와 부드러운 필법으로 채색돼 있으나 화면 좌측에 등장하는 남녀 한 쌍과 그림 상단의 우산들은 뚜렷한 윤곽선과 치밀한 필치로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19세기 말 모더니즘 화가들이 직면한 시대적 고민들을 대변하고 있다. 인상주의 화풍은 아카데미 회화의 낡은 관습과 어두운 색조를 변화시켰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창작 과정이 지나치게 직관적이며 결과물이 불완전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르누아르는 인상주의 미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아카데미즘에 기반을 둔 전통 회화 기법과 인상주의 미학을 접목하려 했다. 하지만 감각적이면서 순간적인 첫인상의 신선함과 견고한 사물의 실체를 동시에 구현하고자 했던 그의 시도는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과제였다. 구시대의 잔재를 제거하지 않고 새로운 혁신을 도모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서로 혼합될 수 없는 상이한 미학적 가치와 기법이 혼재돼 있는 르누아르의 후반기 작품들은 미술사적으로 절충주의로 규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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