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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의 거짓말도 맥박·표정보면 다 안다 [수사는 과학이다]

<8>통합심리분석

동거녀·택시기사 살인범 이기영

허위로 시신·범행 도구 숨겼지만

檢 뇌파 변화 등으로 진위 이끌어

수사·공판 단계서 양형자료 인정도

대검 과학수사부 심리분석실은 전국 검찰청에서 사건 피의자를 상대로 진행되는 통합심리분석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사진제공=대검




지난 2022년 8월3일 경기도 파주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50대 여성 A씨. 하지만 시신은 사라진 상태였다. A씨가 머리를 둔기로 여러 차례 맞고 숨졌다는 정황만 현장에 남아있었다. 미궁 속에 빠졌던 사건의 진실은 의외의 장소에서 드러났다. 60대 택시기사 B씨가 숨진 범행 현장에서 A씨의 혈흔과 범행도구 등이 발견되면서 내막이 밝혀졌다.

용의자로 지목된 인물은 A씨의 동거인 이기영씨였다. 전과 4범인 그는 A씨를 둔기로 무참히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했다. 범행 이후엔 피해자의 신용카드와 휴대전화로 수천만원을 대출받아 유흥비로 탕진했다. 그 과정에서 음주운전을 하다가 B씨의 차량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고, 신고할 것을 우려해 숨진 A씨의 집으로 유인해 추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씨를 강도살인 및 특가법상 보복살인 등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문제는 사라진 A씨의 시신이었다. 경찰은 “범행 다음날 A씨의 시신을 경기도 파주 공릉천에 유기했다”는 이씨 진술을 토대로 일대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시신과 범행도구는 발견되지 않았다. 사건의 유일한 증거인 이씨의 진술과 현장에서 발견된 혈흔 등에 의존해 범행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이씨를 상대로 통합심리분석을 진행했다. 호흡, 혈압, 맥박, 피부전기반응 등 자율신경계 반응을 관찰해 진술의 거짓 여부를 판단하는 심리생리검사와 표정이나 제스처 등을 관찰해 진술의 진위를 판단하는 행동분석, 뇌파 변화를 통해 범죄정보를 인지하고 있는 지를 판단하는 뇌파검사, 인지적·성격적 특징과 재범 위험성을 종합 평가하는 임상심리평가가 동시에 진행됐다. 그 결과 이씨는 감정 및 충동조절능력이 부족한 반사회적 인격장애, 즉 강한 사이코패스인 것으로 확인됐다. 심리분석관과의 면담 과정에선 범행 당일 동거녀의 뺨을 2~3차례 때렸다는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범행 직전에 둘 사이에 심한 갈등이 빚어지는 상황이 연출됐다는 증거다. “홧김에 렌치를 던졌는데 A씨가 맞고 쓰러졌다”며 우발적 살인을 주장하던 이기영이 진술이 거짓임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택시기사 살해 과정에서는 “합의금 300만 원을 주려고 집으로 데려갔지만 더 많은 돈을 요구해 우발적으로 살해했다”는 진술이 허위라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당시 이기영의 통장 잔고가 17만 원 밖에 없어서 처음부터 합의금을 줄 생각이 없었고, 신고를 막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총 사흘간 진행된 심리분석 결과, 검찰은 그동안 이기영이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이 모두 거짓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기영 역시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진행된 심리분석관의 면담에서 일부 범행을 시인했다.

방철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심리분석실장은 “이기영은 면담 중 과도하게 예의를 지키는 타입이었다”며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줘 수사와 재판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계산적이고 전략적인 행동으로 판단된다”고 진단했다. 방 실장은 이어 “이기영은 행동분석 과정에서 거짓말을 할 때마다 손으로 이마를 만지거나 입술압착 반응을 보이는 특징이 드러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통합심리분석 결과 등을 바탕으로 지난 12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이기영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통합심리분석 결과는 수사 및 공판 단계에서 양형자료로도 인정받고 있다. 그동안 우발적 살인을 주장해오던 이기영은 최후변론에서 “제 죄에 대한 일절 변명의 여지가 없다. 피해자에게 사죄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며 “저에게 중형을 선고해서 사회적으로 물의가 없도록 해달라. 엄벌에 처하는걸 정당하게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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