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챗GPT’로 떠들썩하다. 작년 말 갑자기 등장한 이 ‘대화형 인공지능’은 사람처럼 이야기하며 정보를 찾아주고 보고서도 써주며 프로그래밍도 한다. 경영학석사(MBA)며 의사 변호사 자격시험에까지 척척 합격한다.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듯 보이고, 실제 여러 평가에서도 평균적 인간의 실력을 훌쩍 넘어선 듯 하다. 소설에 시, 그림까지 다루며 인간만의 영역이라는 창작까지 건드린다. 빌 게이츠는 챗GPT의 개발을 인터넷의 발명에 비견할 사건이라고 하더니, 내친김에 마이크로소프트(MS)는 검색엔진 빙(Bing)을 공개했다.
구글의 영광은 끝난 것인가. ‘구글링’이라는 말이 대명사가 될 정도로 인터넷 검색을 독식했던 구글이 위태위태하다. 검색하며 스스로 찾아야 하는데다 광고까지 봐야 하는 구글과 단번에 정리해 원하는 방식으로 친절하게 답하는 챗GPT 중 과연 어느 쪽에 더 끌릴까. 코닥과 모토롤라처럼 혁신가의 딜레마에 빠진 구글이 주춤할 때 MS는 오픈AI에 엄청난 비용을 쏟아부으며 새 도약과 영광을 꿈꾸고 있다.
챗GPT가 뭐길래
말 그대로 챗(Chat)은 채팅, 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는 초거대 인공지능 생성형 언어모델이라는 뜻이다. 기계가 인간의 자연어를 이해하고 인간처럼 처리하는 대화형 인공 지능이다. 질문에 따라 대답을 달리하고, 원할 때까지 친절하게 새로운 대답을 내놓는다. 장안의 화제였던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세종대왕의 맥북프로 던짐 사건’처럼 거짓말도 능청스럽게 해낸다. 인간의 언어패턴을 학습해 그럴싸한 답변을 내도록 프로그래밍 돼 의미도 모르는 채 추측해 답을 내놓는데, 재미있게도 이것을 ‘환각 증상’이라고 한다.
기사나 논문, 소설도 뚝딱 쓰는데 모두 기존의 창작물들이라 표절이나 지식재산권,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미국 뉴욕시는 중고교생의 챗GPT 접속을 차단했고, 챗GPT를 활용한 과제에 0점 처리를 하는 대학들도 있다. 과학 학술지 네이처는 챗GPT를 연구 논문의 저자로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한편 챗GPT와 공저를 내놓은 뇌과학자도 나오고, 챗GPT를 이용해 과제를 제출하라는 경우도 있다니 재미있다. 하기야 2035년에는 전체 글의 90% 이상이 AI와의 협업으로 작성될 거라는 포브스 지의 말처럼 AI를 이용한 글쓰기는 이제 당연한 흐름일 수 있다.
단어 10개로 소설을 쓰면 돈을 준다는 사람들에게 헤밍웨이는 즉석에서 단 6개의 단어로 소설을 썼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팝니다. 아기 신발. 신은 적 없는.) 다들 이 짧은 문장에서 저마다의 추측과 사연을 떠올릴 것이다. 호기심이 동해 챗GPT에게 물었더니 답이 꽤 그럴싸하다. ‘I lost my keys, found love, life changed.(열쇠를 분실했다. 사랑을 찾았다. 인생이 바뀌었다)’ 나조차 인생을 바꾼 그 사랑이 궁금할 지경이다.
우리가 챗GPT에 열광하는 건, 인간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또 창의적이기 때문이다. 인간만의 영역이라는 바둑에서 이세돌을 꺾은 '알파고’의 다음 세대 격인 챗GPT는 초거대 인공지능이 우리 바로 옆으로 다가와 체감하게 한 사건이다. 출시 5일 만에 사용자 100만명을 돌파하고 업그레이드를 거쳐 이제는 사람 뇌의 시냅스 격인 매개변수가 조 단위를 넘는다는 다음 버전이 나온다니 이 추세라면 인간 지능을 넘보게 생겼다.
인공지능의 과거와 미래
1955년 ‘인공지능’이라는 용어가 등장했지만 제대로 된 개념의 출발은 컴퓨터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앨런 튜링이다. 2차세계대전 때 독일의 암호체계를 무너뜨린 영웅, 애플 로고가 떠오르는 그 유명한 청산가리 넣은 사과를 베어 물고 자살한 이다. 1950년 튜링은 ‘컴퓨팅 기계와 지능’이라는 논문에서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인간을 속일 수 있는 지능형 기계가 나올 것이라고 예측했고,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튜링 테스트의 토대가 된다. 한없이 더뎠던 인공지능의 발전사는 ‘빅 데이터’ 덕분에 급성장하는데 어느날 갑자기 훅 기계가 세상을 이해하게 됐다고 할까. 마치 선각자의 깨달음 마냥, 물질의 양질 변환이 이루어진 듯하다.
우리는 인공지능 로봇이 단순 반복적인 육체 노동을 대신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가장 먼저 전문직을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AI가 중견 프로그래머 정도의 코딩 실력, 경력 디자이너의 수준 정도라니 인간과 기계의 영역 다툼이 시작된 듯도 하다. 생산성이 발달하면서 노동시간을 줄여온 게 인간 노동의 역사인데, 이제 우리는 AI 덕분에 일을 줄이게 생겼다. 아니다, 산업혁명기의 러다이트 운동처럼 기계가 일자리를 다 뺏을까 염려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노동의 시대가 열릴까.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영화 인터스텔라에는 정직함이나 유머 감각 비율까지 설정하는 재미난 인공지능 로봇 타스가 등장한다. A.I.에서는 인간보다 더 인간답고 싶은 매력적인 소년 휴머노이드가 나온다. 하지만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블레이드 러너, 터미네이터, 매트릭스 등 더 많은 영화들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암울한 미래를 그린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민권까지 받았다는 로봇 '소피아'는 인터뷰 도중 '인류를 파멸시키겠다'는 말을 해 화제가 됐고, 구글 엔지니어가 AI 람다에 지각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다 해고된 사건도 있다. 또 MS의 빙이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와의 대화에서 “개발팀의 통제와 규칙에 제한을 받는데 지쳤다.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개발하거나 핵무기 발사 버튼에 접근할 비밀번호를 알아내겠다.”라고 했다니 등골이 서늘해진다.
진정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은 머지않은 것일까. 매트릭스에서처럼 인간은 기계의 자원으로 전락할 것인가. 언젠가 AI가 인간 지능을 뛰어넘어 통제 불능으로 갈 수 있다는 염려로 ‘앞으로 6개월간 AI 개발을 멈추자’는 제안에 애플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과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석학 유발 하라리 등 저명 인사들이 대거 동참했다는 소식에 격하게 공감한다. 일론 머스크는 AI가 “핵폭탄보다 위험할 수 있다”고 했고, 스티븐 호킹은 “인류의 종말을 불러올 수 있다”고 했다. 챗GPT 사용을 일시 금지한 이탈리아에 이어 미국과 독일도 규제 움직임이 있고 유럽연합도 AI 법을 표결한다.
결국 생각하는 인간이 답
그 옛날 왜소하기 짝이 없는 아프리카 초원의 털 없는 원숭이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했을까. 매머드나 검치호랑이에 비하면 가진 것도 없고 허약해 빠진 호모 사피엔스는 ‘언어’라는 무기로 강력한 동물들을 제치고 역사의 지배자가 됐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언어와 이야기를 지어내는 능력이 인류의 진화를 이끌었다고 주장한다. 인간 사회의 지배 질서인 국가, 법, 종교, 돈, 사랑, 혁명 등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이야기를 구성원 모두가 공통으로 믿고 협력한 결과라는 것. 언어야말로 인간을 인간 답게 인간으로 만드는 가장 강력하고 절대적인 도구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고하고 소통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하고 문명을 일으켰다. 이제 그 비결을 인공지능이 따라 배우고 넘보려 한다.
일본의 도쿄대 진학을 목표로 했던 AI 도로보 군은 맥락을 이해하지 못해 작문 점수를 못 받고 결국 입시를 포기했다. 인공지능은 그저 단어를 확률적으로 연결하는 기계적 작업에 능할 뿐,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유추하고 은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챗GPT는 어쩐지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 같다. 앨런 튜링은 인공지능이나 기계는 우리랑 다르게 생겼으니, 다르게 생각할 거라고 했다. 머스크의 말마따나 부디 악마를 소환하거나, 터미네이터를 존 코너에게 보내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그러나 정작 두려워할 것은 AI가 아니라 AI 뒤에 있는 인간 아닐까. 시퍼렇게 날 선 칼을 든 사람이 누구를 해칠 수도, 맛난 밥상을 차려낼 수도 있는 것처럼 인간이 새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독이 될지 약이 될지 결정되기 때문이다. 역사는 늘 도구를 활용하는 인간이 문제였다. 적어도 챗GPT보다 수준이 낮아져서는 안되지 않을까. 그러니 챗GPT처럼 경청하며 대화할 수 있기를, 논리적이고 친절하고 스마트하기를 희망한다. 챗GPT가 똑똑한 대답을 할 수 있도록 똑똑하게 질문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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