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위기감이 커진 미국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의 예금이 134조원이나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예상을 웃도는 규모로 투자자들의 우려도 재점화하고 있다.
24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퍼스트리퍼블릭은 1분기 실적보고서를 통해 예금 보유액이 작년 말보다 720억달러(40.8%) 감소한 1045억달러(약 140조 원)라고 밝혔다. 시장의 1분기 예상 예금액 평균치는 1450억달러였지만, 이보다 뱅크런(현금 대량 인출 사태) 규모가 훨씬 컸던 것이다. 특히 예금 보유액에는 지난달 JP모건 등 대형 은행 11곳으로부터 지원받은 300억달러가 포함돼 실제 감소액은 1000억달러(약 133조 6300억원)가 넘는다. 수익성도 나빠져 1분기 순이익은 2억 6900만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33% 감소했다. 매출은 13% 축소된 12억달러였다.
퍼스트리퍼블릭의 주가는 지난달 초 이후 90% 가깝게 폭락했고 실적 발표 후 시간 외 거래에서는 한때 22% 급락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퍼스트 리퍼블릭의 분기 실적이 투자자들의 우려를 재점화시켰다"고 평가했다.
닐 홀랜드 퍼스트리퍼블릭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실적 보고서에서 "대차대조표를 재조정하고 지출과 단기 차입금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을 20~25% 줄이고 임원 급여도 삭감할 계획이다.
지난해부터 미국의 금리가 가파르게 올라가자 퍼스트리퍼블릭 고객들은 적은 이자에 만족하지 못해 고금리의 다른 대안으로 돈을 옮기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달 SVB의 파산으로 퍼스트리퍼블릭 고객의 예금 인출은 한층 가속화했다.
WSJ은 퍼스트리퍼블릭이 ‘산송장’(Living Dead)대열에 합류했다고 평가했다. 지난 22일 현재 퍼스트리퍼블릭이 연방준비은행(FRB)과 연방주택대출은행(FHLB) 등으로부터 받은 대출 잔액은 1040억달러에 달한다. 1분기에 이 대출에 대해 3.0~4.9%의 금리로 이자를 지불했다. 하지만 1분기 퍼스트리퍼블릭 여신의 평균 금리는 3.73%에 그쳤다. 퍼스트리퍼블릭이 받은 대출에 대한 이자 비용이 내어준 대출로 벌어들인 이자 수익보다 많은 암울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웨드부시증권의 데이비드 치아베리니는 "퍼스트리퍼블릭이 향후 몇년 동안 영업 손실에 직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WSJ에 따르면 퍼스트리퍼블릭은 매각이나 외부 자본 투입 등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은행 측은 "전략적 선택지들을 추구한다"고만 밝혔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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