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만기 연장, 상환 유예 조치를 받은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대출 잔액이 5대 시중은행에서만 38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이 2일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다섯 차례에 걸친 상환 유예에도 16만 8994명의 차주가 37조 6159억 원을 갚지 못하고 있다. 당장 9월 상환 유예 조치가 종료되면 수십조~수백조 원의 잠재 부실이 한꺼번에 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경기 침체로 금융사 연체율도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5대 은행 연체율은 지난해 말 0.16~0.27%에서 1분기 말 0.20~0.34%로 뛰어올랐다. 카드사 연체율은 1%를 넘어섰으며 저축은행과 대부 업체 연체율도 각각 5%, 10%를 웃돌고 있다.
이 와중에 퍼스트리퍼블릭은행 파산 위기 등 미국의 금융 시스템 리스크가 국내로 전이될 위험도 커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금융회사가 결성한 해외 부동산 펀드는 81조 8872억 원으로 9년 전보다 14배 이상 늘었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 대출 부실이 국내 금융시장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 당국은 국내외 금융 리스크가 언제 어디서 불거질지 모르는 만큼 선제 관리에 나서야 한다. 금융회사의 자본금을 확충하고 대출 부실에 대비한 충당금 적립을 강화하는 등 건전성 규제를 실시해야 한다. 부실 위험에 노출된 자산의 축소도 시급하다. 빚을 갚지 못하는 자영업자나 기업에 대한 대출금 탕감과 추가 유예는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추진돼야 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일시적 유동성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우량 기업이 도산하는 일이 없도록 정교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22년째 5000만 원에 묶여 있는 예금자 보호 한도를 상향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9월 상환 유예 조치가 종료될 때까지 갚지 못한 빚은 부실 대출로 분류되면서 연체율이 껑충 뛸 것이다. 자금난으로 지난해 말부터 급증한 기업 대출 만기까지 겹치면 더 큰 위기가 닥칠 수 있다. 정부와 금융권은 커지는 가계·기업 부실이 금융 시스템 전반의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방파제를 높이 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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